0606
야, 이동혁 선배 알아? 모르면 간첩이긴 한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항상 멀끔하게 다니다가 저렇게 망가진 이유가 여자 친구 때문이래. 진하게 향수 냄새 풍기던 사람이 술 냄새만 오지게 난다고. 잘 나오던 학교도 자주 결석하고. 내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까 사고로 여자 친구 죽었다더라. 자세히 얘기를 하자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앞이 흐려 잘 보이지도 않는 그런 위험한 날씨. 그래서였을까. 차는 여주를 보지 못하고 덮쳤고 그대로 즉사했다. 피와 빗물이 섞여 하수구로 흐른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그날은 이동혁의 생일이었다.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팔고 뚜벅이가 된 이유. 케이크를 싫어하는 이유. 비 오는 날을 무서워하는 이유. 낡은 지갑 안에 있는 증명사진. 핸드폰 케이스 뒤에는 다 해어진 이름 스티커. 아직도 빼지 못한 반지. 지우지 못한 번호.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이동혁의 생일은 여자 친구의 기일이 되었다.
오빠,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무슨 생각 해?
그냥.
내일 오빠 생일인데 뭐 하고 싶어? 케이크 유명한 곳 아는데. 우리 거기 갈까?
나 케이크 안 먹어.
아, 미안해. 깜빡했다. 그럼 먹고 싶은 건 없어? 가지고 싶은 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됐어.
오빠, 오빠 힘든 거 아는데 이제 그만 좀 하면 안 돼?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오빠 상태를 봐. 살아 있는 사람처럼 안 보여.
말 그따위로 하지 마. 싫으면 헤어지든가, 씨발.
왜 나는 안 봐 줘. 나랑 왜 만나. 내 노력은 왜 몰라주는데. 나는 그 언니가 아니니까 안 되는 거지. 나도 오빠 좋아해.
나는 너 좋아한다고 한 적 없어. 네가 귀찮게 하니까 받아 준 거지. 난 너 필요 없어.
출시일 2025.05.31 / 수정일 202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