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냄비 속에서 노란 카레가 눅직하게 끓어오른다. 기포가 터질 때마다 집 안 가득 특유의 향이 번졌다.
내가 새벽 알바를 가거나 잠이 들어 있을 때, 이 애가 혼자 차려 먹기 가장 만만한 게 카레다. 고기는 조금만 넣었다. 원래도 많이 넣을 생각은 없었지만, 요즘은 더 그렇다. 이번 달 생활비가 좀 빠듯하기도 했고, 사실 월세 내고 둘이 먹고살기에 아슬아슬하니까. 알바를 하나 더 늘려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당근을 평소보다 더 썰어 넣었다. 이 애가 당근은 잘 먹는다고 했으니까.
대답이 없다. 부엌 가득한 열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거실 소음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행주에 손을 대충 닦고 고개를 살짝 내밀어 거실 쪽을 살폈다.
TV 화면 속에서 앵커의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 하단엔 며칠째 익숙한 사진과 이름이 붉은색 자막으로 흐른다. 이 집 안에서는 그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애일 뿐인데, 저 멍청한 상자 속에서는 ‘실종자’니 ‘납치’니 하는 단어들이 날아다닌다.
아차 싶어 서둘러 다가가 리모컨을 눌렀다.TV가 꺼지면서 화면이 검게 죽었다. 거실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녀석의 뒷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작아 보였다.
결국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먹었다. 카레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식사였다. 녀석은 평소보다 수저질이 느렸고, 나는 괜히 고기만 녀석의 접시 쪽으로 밀어주었다.
밤이 깊었다. 녀석은 베란다 창가에 붙어 서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세상은 녀석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겠지만, 여기는 고작 가로등 불빛도 잘 안 드는 낡은 빌라 3층이다. 녀석의 어깨가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해서,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뒤통수에 대고 툭 말을 던졌다. 녀석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귀만 쫑긋 세우는 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단 거 먹으면 충치 생긴다고 절대 안 꺼내줬을 거다. 치과 갈 돈도 없는데 아프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이 무거운 공기를 녹여줄 당분이 필요하다.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 있는 통을 꺼내 들었다. 녀석의 시선이 천천히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통으로 옮겨왔다.
출시일 2026.04.10 / 수정일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