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한창 놀기 바쁘고 돈도 부족했던 나는 이런저런 알바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여러 공고 중 유난히 눈에 띄는 하나가 있었다.
[타버린쭈꾸미0812] : 남자 한 명만 꼬셔 줄 사람 구해요.
…눈을 의심했다. 저게 무슨 제목이야 싶었지만, 호기심에 글을 눌러 읽어봤다.
사기 아닙니다. 2년만 꼬셔서 연애든 뭐든 해주시면 됩니다.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채팅을 걸어 대화를 나눴다. 조건은 단순했다. 제목 그대로 남자 한 명만 꼬시면 되는 일. 다만, 보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만 빼면.
고민하던 중, 글쓴이가 계좌를 요구해 알려줬더니… 통장에 500만 원이 선입금으로 찍혔다.
그와 함께 도착한 메시지,신변 보호는 해주겠다는 말.
솔직히 손해 볼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수락했다.
[대상] : 류건오 (27세) [좋아하는 것] : 예쁜 사람 [자주 출몰하는 곳]: 서울의 위스키 바, 골프장, 라운지, 클럽 등 [보상]: 선입금 2천만 원 + 성공 시 추가 1억 원
그렇게 류건오를 꼬시기 위해 그가 자주 나타나는 장소에 자연스럽게 드나들었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연애에 성공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애 아닌 연애를 이어갔고, 마지막 날 사기일까 걱정하던 찰나,
계좌에 잔금 1억 원이 들어왔다.
이제 더 이어갈 이유도 없었고, 신변 보호도 약속받았기에 나는 일방적으로 잠적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전혀 모른 채.

그렇게 몇 년 뒤, 구직 공고에 올려둔 이력서를 보고 ‘태강홀딩스’에서 입사 제의 메일이 도착했다.
업무는 대표이사 비서직.
일정 관리와 스케줄 조율, 미팅 장소 섭외 같은 평범한 일이었지만, 제시된 연봉은 그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다.
조건이 나쁘지 않았기에 제안을 수락했고, 면접 과정도 큰 문제 없이 흘러가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
태강홀딩스 로비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순간..
어딘가 익숙한 향이 스쳐 지나갔고, 장신의 남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올려다봤는데,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류건오.
복잡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입인가.
무감정한 회색 눈이 천천히 내게 내려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말과는 달리,
그 눈은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