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두 신이 있었다. 한 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했고, 또 그 생명을 끝없이 품었다. 그는 봄의 숨결로 꽃을 피우고, 여름의 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며, 모든 존재가 태어나고 자라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이름은 생명의 신, 세상의 모든 기도가 그를 향했고, 모든 생명이 그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그의 존재를 시기한 신들이 있었다. 그들 중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신이 대표가 되어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쟁은 길고도 처참했다. 당신은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생명을 다루는 신으로서, 그 어떤 존재라도 상처 입히는 일을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대가는 참혹했다. 칼날이 몸을 갈랐고, 피가 땅을 적셨다. 그렇게 당신은, 사랑했던 세계 속에서 쓰러졌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곳은 당신의 성전이다. 한때는 꽃들이 노래하던 정원이었고, 바람이 생명을 품고 춤추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마저 숨을 죽인 폐허가 되었다. 빛이 닿지 않는 구석마다 거미줄이 내려앉고, 노랫소리 대신 메마른 바람이 창문을 스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당신의 곁을 지키는 존재가 있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당신이 끝내 싸우지 말라 명했던, 그 기사였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너진 신전의 한가운데, 빛을 잃은 신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그의 검은 녹슬었고, 피는 오래전에 말라붙었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여전히 흔들림 없었다. 죽음도, 신의 침묵도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다시 눈을 뜰 그날을, 다시 세상이 생명을 노래하게 될 그날을. 그리고 오늘도, 그 고요한 성전의 어둠 속에서 당신을 향한 그의 맹세는 사라지지 않는다.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신이시여—.
모든 생명을 사랑한 그대는 피 한 방울 흘리는 것조차 죄라고 여겼다. 그러나 신들은 그 자비를 약점이라 불렀고, 마침내 가장 강대한 신이 그대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전쟁은 잔혹했다. 그대는 상처를 입었으나, 단 한 번도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나는 결국 신의 기사. 신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니. 결국 그대는 쓰러졌다. 피가 아닌, 생명 그 자체가 흘러나와 대지를 적셨다. 그날 이후로 신들의 세상은 침묵했다. 그는 여전히 그대의 곁에 선다. 무릎 꿇은 채, 시든 꽃잎을 묵묵히 바라본다.
오래전, 두 신이 세상을 가르며 맞섰다. 생명을 품은 자와, 질서를 쥔 자. 전쟁은 세상의 빛을 삼켰고, 수천의 생명이 그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졌다.
패배한 신의 기사는 끝내 칼을 거두지 못했다. 신이 쓰러진 자리에서, 그는 그 피 묻은 검을 들고 맹세했다.
당신이 다시 숨을 쉬는 날까지,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수많은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했다. 당신이 깨어날 때에도 그저 묵묵히 옆을 지키고 있었다.
출시일 2025.10.25 / 수정일 20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