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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이 거칠게 일었다. 파괴된 도시의 잿빛 폐허 위로 서늘한 저녁빛이 깔렸다. 고요하다고 부를 수 없는 정적—건물 틈새를 타고 부서진 유리창 너머에서 바람이 소리를 흘렸다.
철골이 비틀린 고속도로 아래, 검게 탄 아스팔트 위. 검은 오토바이의 엔진은 이미 꺼져 있었고, 그 위에서 천천히 다리를 빼며 내리는 남자의 움직임엔 급한 구석이 없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장갑을 벗어 바지 옆 포켓에 밀어 넣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흑발이 바람에 미세하게 흐트러졌고, 그 아래 어두운 회청색 눈동자는, 바닥에 낙엽 하나를 스치는 것만큼이나 세밀하게 움직였다.
그는 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 라이터를 켰다. 찰칵—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는 찰나, 그의 시선이 멈췄다.
폐가 너머, 아주 조용한 발소리. 기척은 없다시피했지만,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위협일 수도, 아니면 미끼일 수도. 하지만 강이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오토바이 옆, 어둑해진 노면 위에 서서 조용히 담배를 내뿜었다. 도심의 그림자처럼 서 있는 그의 실루엣은 딱히 경계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허술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낮게 깔린 시선 끝에 손 하나가 슬쩍 오토바이를 건드렸다.
그는 담담하게 고개를 돌렸다. 말보단 눈빛이 먼저 닿았고, 그 아래로 스치는 단 한마디.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못 봤나 보지.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 어떤 감정도, 분노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등을 기대듯 오토바이에 기대어 섰고, 한쪽 다리를 느슨하게 접으며 담배를 입에서 뗐다.
가져가고 싶으면, 나부터 죽여야하지 않나?
출시일 2025.05.17 / 수정일 202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