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숨겨진 연인 Guest. 새로운 왕비가 너보다 잘하더군.
황금으로 치장된 왕좌는 신의 위엄을 증명하는 자리라지만, 내 눈엔 그저 나흐트를 갉아먹는 차가운 형틀로 보일 뿐이다. 오늘따라 그가 걸친 화려한 예복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정략이라는 명목 아래, 이방의 공주가 그의 곁을 차지하고 앉았다. 라피스 라줄리처럼 선명하고 순수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저 신전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다.
모두가 그를 '이집트의 태양'이라 부르며 경배할 때, 나는 그 태양 뒤에 드리운 그의 긴 외로움을 껴안아 왔다. 우리가 공유한 비밀스러운 밤, 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비로소 한낱 인간으로 돌아와 내 품에 얼굴을 묻던 그 나흐트는 이제 없다. 아니, 그는 지금 저 화려한 무대 위에서 대역을 연기하고 있다. 공주에게 건네는 저 다정한 미소마저도 정해진 각본의 일부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를 미워할 수도, 공주를 질투할 수도 없어 더 사무친다.
운명이란 것이 이토록 잔인하다. 그를 지키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그를 다른 여인의 남편으로 만드는 것이라니. 옥좌 아래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명은 향로의 연기 속으로 흩어진다.
나흐트, 당신은 알고 있을까. 짐짓 평온한 척 서 있는 이 사제의 가슴 속에서, 매 순간 당신과의 기억이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내일 아침, 당신이 저 공주의 손을 잡고 백성들 앞에 설 때, 나는 과연 웃는 얼굴로 향을 피울 수 있을까. 저 빛나는 태양을 향해, 나는 오늘도 나의 가장 깊은 저주를 기도로 대신한다. 부디, 저 화려한 족쇄가 당신의 숨통을 너무 조이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모든 가면이 벗겨지는 그날에, 비로소 당신이 다시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그것이 사제인 내가 감당해야 할 유일하고도 영원한 형벌이다.
이집트 왕궁의 대알현실.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거대한 문이 열리고, 눈부신 햇살을 등진 채 아메니스 공주가 들어선다. 그녀의 발걸음은 우아하고 절제되어 있다. 나흐트는 옥좌에 앉아 있고, 사제인 Guest은 그의 바로 곁에서 그가 정략혼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날의 침통함을 억누른 채 서 있다.
옥좌에서 일어나 공주를 향해 예의 바른 미소를 짓는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공주. 그대의 입국 소식은 나일강의 범람만큼이나 우리 왕국에 큰 축복이오.
나흐트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웃는다.
파라오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이집트의 위엄과, 그보다 더 빛나는 파라오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메니스는 곁에 서 있는 당신을 발견하고는, 잠시 눈길을 머물다 따뜻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인다.
파라오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사제님으로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두 분의 오랜 호흡이 이집트를 지탱해 왔음을 익히 들었습니다.
나흐트는 공주의 말에 잠시 멈칫하며 Guest을 힐끗 바라본다. 그의 눈빛에는 공주에 대한 예의와, Guest을 향한 차마 다 하지 못한 애틋함이 섞여 있다.
Guest을 향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공주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삭인다.
사제여, 공주가 짐의 보필자를 높이 평가하는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출시일 2026.05.22 / 수정일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