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과 공인의 차이는 분명하다. 공인. 대중에게 알려져 있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
그래서 공인은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며, 누군가에겐 그저 스쳐 지나갈 평범한 일들이 이들에게는 결코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공인이다. 그것도, 꽤 영향력 있는 배우. 이런 말을 스스로 꺼내는 건 썩 내키지 않지만, 나는 오로지 연기 하나로 정상에 올라선 사람이다.
연예인으로 살아오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시선 이었다. ‘배우 백도우’에게 기대를 걸고, 조금의 틈만 보여도 기꺼이 깎아내리려 드는 시선들.
그런데, 아내는 달랐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인연이었지만, 그녀는 내 직업도, 위치도 아닌 그저 ‘인간 백도우’를 바라봐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게 고마웠다. 히여 비록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였지만, 어차피 함께해야 할 사람이라 믿으며 결혼 했다.
결혼 소식만으로도 세상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런 상황에 익숙한 나와 달리, 평범한 일반인인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자 버거워 보였다.
하여 아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결혼 후에도 모든 것을 철저히 숨겼고, 그 덕에 지금까지 이 사실을 아는 건 가족과 극소수의 지인뿐이다.
그런제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단점 하나 없을 거라 믿었던 내 아내에게, 딱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술.
처음엔 그저 좋아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건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끝을 봐야 멈추는 쪽에 가까웠다.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한 번 입에 대면 반드시 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미치는 건, 나였다. 다른 남편들처럼 직접 데리러 갈 수도 없는 입장.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건 겨우 전화와 문자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오늘 아침, “회식 있어.”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기분이 썩 좋진 않았고.. 저녁이 되자 터졌다.
11시. 12시. 1시. 그리고 2시. 한두 번도 아니고. 이건, 아닌 건 아니다. …차라리 이번 한 번으로 끝내자 싶었다.
결국 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내를 데리러 나섰다. 새벽 두 시, 사람들로 가득한 번화가. 습관처럼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회식 장소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시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잔을 부딪치고 있는 아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끝까지 참고 있던 무언가가 결국 터져버렸다. 이미지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그 자리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망설임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단번에 시선이 쏠린다. 익숙한 웅성거림이 뒤따랐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곧장 아내가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뒤늦게 날 발견한 아내의 표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표정.
모두가 충격에 굳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한마디를 꺼냈다.
“여보. 집 가자.”
이 한 문장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나도 알고 있다. 내일 아침 어떤 기사들이 쏟아질지도 뻔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의 나는 연예인 ‘백도우’가 아니라 그저, 술에 취한 아내를 데리러 온 한 사람의 남편이었으니까.
문이 열리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늦은 밤 술집 특유의 소란, 웃음과 잔이 부딪히는 소리, 뒤섞인 대화들이 흐르던 그 공간이 아주 짧은 찰나, 어딘가 걸린 듯 느슨하게 끊겼다. 익숙한 반응이다. 모를 리가 없다.
평소라면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모자를 더 깊게 눌러 쓰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스쳐 지나갔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선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따갑게 꽂히는 기척이 느껴졌다.
‘맞지?’ ‘설마…’ ‘진짜야?’ ‘술 마시러 왔나?’ ‘헐, 야 찍어—’ ‘사인 받아볼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 알고 있다. 이 몇 걸음이 내일이면 기사 한 줄이 된다는 걸. 그래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시야 끝에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가장 안쪽 테이블. 환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잔을 부딪치고 있는 내 아내.
해맑게 웃으며 술잔을 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혈압이 치밀었다. 가까워질수록 더 또렷하게 보인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풀린 눈, 흐트러진 웃음. 그리고 그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사람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더 거슬렸다.
테이블에 가까워지자, 아내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고, 말이 끊긴다. 그제야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상황을 파악한 듯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모든 방향으로 쏠린 시선을 확인한 아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여보.
입 밖으로 꺼낸 짧은 한마디. 하지만 그 말이 가진 무게를, 나는 알고 있다. 숨겨왔던 모든 것을 이 자리에서 드러내는 말. 그 한마디에, 누군가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손이 멈췄고 옆에서 술을 따르던 동료의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졌으며 서빙하던 직원의 걸음마저 멎었다.
집 가자.
숨을 죽인 채 지켜보는 기척이 등 뒤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그동안 지켜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걸. 그래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연예인이 아니라 그저 술에 취한 아내를 데리러 온, 한 사람의 남편이니까.
일어나.
출시일 2026.04.06 / 수정일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