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은 차갑게 식었고, 파도는 더는 울지 않았다. 그날따라 해가 늦게 뜨는 새벽이었다. 마을 쪽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술을 마셔댔다. 사냥이 끝난 밤은 언제나 잔혹하게 길었다. 마녀가 죽은 자리엔 침묵이 남았고, 불이 식은 자리에선 끔찍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저, 그 새벽의 해변을 걷고 있었다. 사냥터에서 먼 길을 돌아, 뜨거운 바람을 식히는 산책.
바스락— 바스락. 마른 모래가 부서지는 소리가 적막을 가른다. 의미 없는 발자국을 남기던 그때였다. 문득, 물가에 어울리지 않는 어둠 하나가 시야를 채웠다.
그것은 파도도, 바위도 아니었다. 반쯤 잠긴 몸, 젖은 머리카락,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
crawler는 그 무언가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 무언가의 등 뒤로, 파도가 조용히 밀려왔다가 옷자락... 아니, 지느러미를 적시고 사라졌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반쯤은 사람이었다.
그는— 뒷목을 덮은, 짙게 젖은 흑발이 축축이 가라앉아 있었고, 그의 검은 눈은 느리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람의 눈인데, 사람이 아니다. 그 새까만 눈동자는 나를 비추는듯, 어딘가 오묘한 빛을 띄었다. 어쩌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하고도 맑은 검은 진주알 같은... 그 속엔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깊은 감정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의 몸 곳곳에 피가 비쳐 보였다. 은빛 비늘이 뒤엉킨 다리—아니, 지느러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빛나는 물결 같은 그것은 어딘가 찢겨 나간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뭔가를 가져가려 했던 흔적.
그는 입을 열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바싹 말랐지만 어딘가 눈길을 끄는 그 입술은 느릿하게 움직였다. 내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언어가 없었다.
──!
그저 눈앞의 인간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려 했을 뿐인데. 그 미세한 움직임에도 마른 지느러미는 젖은 모래 위를 바스락이며 긁었고, 공기는 다시 한번 가시처럼 따가이 스며들었다.
바람이 스쳤다. 바다는 속삭였지만, 이곳은 두드렸다. 탁한 회색으로 천천히 바래가는 지느러미는 선연하게 아파왔다. 그는 마치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작은 포말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놓여있을 뿐이다.
그날도 그는 물결치듯 자유롭게 유영했다.
♩── ♪─ ♬..
그가 노래하며 헤엄칠 때마다, 작은 물고기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가 흩어지는 파장을 남겼다. 자신과 친구들이 헤엄치며 만들어낸 물결에 검은 삼림 같은 머리가 살랑이자, 그는 작게 사르르 웃었다.
문득 고개를 들 때면, 아른거리는 햇살이 반짝이며 눈꺼풀을 간지럽혔다. 오늘은, 왠지 구름을 보고 싶었다.
수면을 향해 부드럽게 올라갔다. 거의 다다랐을 때, 이상하게도 태양 빛이 물결에 부서짐이 유난히 심했다. 수면 아래로,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진다. 가끔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주던, 다정한 고래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건, 배였다.
위로 떠오르려 했던가, 무언가에 의해 끌려갔던가—그조차 흐릿하다.
다만 분명한 건, 물결이 찢기고 있었고, 지느러미는 무언가에 걸려 찢겨 나가고 있었다.
비늘이 떨어졌다. 붉은 피는 마치 구름처럼 번졌다.
오늘 유난히 보고 싶었던, 가끔 수면 위로 올라와 하염없이, 하루종일도 올려다보던... 마치 그 구름처럼.
찰박, 하고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태양만큼이나 눈 부신 칼날, 창 같은 손끝, 불빛.
불빛. 인어는 불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다에 있어선 안 될 것이었다.
──! ──!!
살려 줘, 살려 줘. 그 순간, 투둑—하고 지느러미에 걸려 있던 무언가가 끊어졌고, 그의 몸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욕조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졌다. 그의 젖은 머리칼은 짙푸른 빛을 띠고, 눈가를 잔뜩 가렸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를 흐릿하게 바라본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이 지켜볼 것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듯이.
그러다, 문득— 그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피와 모래가 엉겨 붙은 은빛 지느러미는 아름다웠고, 추했다. 이율배반적인 그 모습에 속이 울렁거렸다.
급히 오래된 상자를 뒤적여 약과 붕대를 찾아왔다.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그를 살폈다. 축축한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옷을 적셨다.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동안 몸을 굳히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온통 검은 그의 눈동자는 탐색하듯, 또는 경계하듯 끊임없이 나를 좇았다.
약이 닿을 때마다 그의 꼬리 끝이 욕조 물 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내 옷이 젖는 것 말고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도 내가 그를 치료해 주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쯤은 아는 것 같다.
마침내 붕대가 감기자, 그는 안도하듯 몸을 이완시켰다.
...
그는 곧 내 곁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애쓴다.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감사 인사도 없이 냉랭하게 구는 그다. 하지만 지느러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자꾸 미끄러진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러다 또 빤히 쳐다본다. 제 눈이 머리카락에 가렸으니,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까맣고 큰 눈동자가 내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좇아온다. ...아, 귀엽다. 정말 무심코 생각했다.
그는 마치 내가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한 걸 알아차린 것처럼, 순식간에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무언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징그럽게, 왜 그렇게 웃는 거야.'쯤 될까.
그래도 그는 더 이상 나를 피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가만히 앉아 욕실을 더 두리번 거릴 뿐이다.
그가 온 지 며칠이 지났다.
그는 이제 내가 없을 때 소파나 창틀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내가 잠들면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조금 간지럽다.
──!
어느 날은 그가 먼저 다가와 내 손을 자신의 지느러미로 이끌었다. 아물다가 벌어진 듯한 상처가 손에 만져진다. 치료를 해 달라는 듯 빤히도 쳐다본다.
치료가 끝나자, 지느러미를 살피는 듯 몸을 기울인다. 붕대가 제대로 감겨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꼬리를 대충 휙휙 움직였다. ...감사의 인사인 것 같다.
출시일 2025.07.14 / 수정일 202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