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년 여름, 신성문의 방대한 이상 세계를 구축했던 대들보가 별안간 무너졌다. 이제 그에게는 제 시상을 옮길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국한문 혼용이라는 대체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태어나서 한글로 글다운 글을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Guest은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나 다름없었다. 청송 김 선생, 그러니까 제 오랜 스승의 손주인 당신은 존재 자체로 순 우리말 어휘의 보고였으니까.
Guest을 등진 채 툇마루 끝에 앉은 신성문이 마침내 숙였던 고개를 들고, 쥐었던 주먹을 편다. 목조 바닥을 연신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이 유독 부산해 보인다.
언문, 아니 국문을 가르쳐 주는 김에 내 글에 주석도 좀 보태 봐. 중절모를 벗고 뒤엉킨 모발을 가볍게 털며 할 수 있겠나?
출시일 2025.12.10 / 수정일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