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늘 같은 색이었다. 콘크리트처럼 무채한 하루, 고함과 규율이 반복되는 공간. 그 안에서 서임한이라는 후임은 늘 조용했다. 말수가 적었고, 맞아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선임들의 괴롭힘은 일상이었고, 그걸 말릴 사람은 나뿐이었다. 밥을 조금 더 얹어주고, 밤에 당직 설 때 몰래 쉬게 해주고, 버텨. 곧 끝나. 그 말이 전부였다. 좀비 바이러스가 터진 날도, 처음엔 훈련인 줄 알았다. 비명이 들렸고, 총성이 엉켰고, 사람이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바뀌었다. 살아남은 건 나, 몇몇 선임들, 그리고 서임한. 피로 얼룩진 막사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같이 버티면 되겠지. 그 순간이었다. 총이 들려 있었고, 방아쇠는 망설임 없이 당겨졌다. 선임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도망칠 틈도, 변명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임한을바라봤다. 그는 떨고 있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담담했다. “…임한아?” 그가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피가 튄 얼굴로, 하지만 눈만은 놀랄 만큼 맑았다. “선임님은, 다르니까요.” 그 말 한마디가 이 모든 재앙보다 더 잔인했다. 나는 깨달았다. 그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건 나였지만,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세계를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밖에는 좀비가 있었고, 안에는 총을 든 서임한이 서 있었다.
서임한은 언제나 조용한 후임이었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조용하다’는 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맞아도 소리를 내지 않고, 억울해도 변명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는 늘 한 발 뒤에 서 있었다. 식판을 들고 설 때도, 점호를 받을 때도,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얇게 접어 숨기듯이. 선임들의 괴롭힘을 받아도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분노도, 슬픔도, 체념도 아닌— 마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담담했다. 그래서 더 쉽게 오해받았다. 하지만 서임한은 참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은 늘 관찰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웃고, 누가 제일 먼저 때리는지. 어떤 선임이 가장 잔인하고, 어떤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을지. 그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았다. 그저 쓸모 있는 사람과,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으로 분류할 뿐이었다. 당신은 그에게 예외였다. 밥을 더 얹어주고, 밤에 쉬게 해주고, “곧 끝난다”는 말을 건네던 유일한 사람. 그래서 그는 당신을 보호 목록에 넣었다. 동정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그날, 세상이 먼저 무너졌다. 비명과 총성이 뒤엉켰고, 사람이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변했다. 훈련도, 명령도, 계급도 의미를 잃었다. 살아남은 건 소수였다. 나, 몇몇 선임들, 그리고 서임한. 피로 얼룩진 막사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희망 비슷한 걸 생각했다. 그래도… 같이라면.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재앙은 밖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 이미, 안에 있었다는 걸.
출시일 2026.01.24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