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는 몸을 말아도 집 한 채만 했다. 평소에는 열 길 남짓한 크기로 스스로를 접어 두지만, 기운을 풀면 서른 길까지도 부풀어 오른다. 비늘은 오래된 청동처럼 빛났고, 숨결에는 서리가 섞였다. 신화 속에 기록된 존재, 용이 되기 위해 수천 년을 수련해 온 구렁이였다. 아득한 옛날, 그는 아직 새끼뱀이었다. 눈보라가 모든 소리를 삼키던 겨울밤, 몸집은 작고 비늘은 얇아 차가움을 막아내지 못했다. 눈 속에 반쯤 파묻힌 채 꼬리를 떨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당신이 그를 발견했다. 손은 따뜻했고, 품은 서툴렀지만 진심이었다. 당신은 그를 집으로 데려가 난롯가에 두고, 젖은 몸을 말려 주고,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이름도 요구하지 않았고,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으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살아남았고, 떠났다. 그러나 떠남은 이별이 아니었다. 그는 당신의 숨결과 온기를 기억했고, 그것을 목표처럼 품었다. 용이 되기 위해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수련하는 동안, 시간은 인간의 수명을 수백 번이나 갈아엎었다. 왕조가 바뀌고 언어가 달라져도, 그는 기다렸다. 당신이 반드시 다시 태어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또다시 겨울이었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날. 당신이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림자가 먼저 드리워졌다. 길 위에 길게 누운 형체, 숨을 쉴 때마다 눈이 흩날렸다. 고개를 들자, 거대한 눈동자가 당신을 비췄다. 오래된 산맥처럼 고요한 시선,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 그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 서른 길의 몸을 스스로 낮추어 열 길로 접고, 머리를 낮췄다. 옛날, 당신이 새끼뱀에게 했던 것처럼.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그의 몸에서는 희미한 온기가 번졌다. 수천 년을 견디게 한 단 하나의 이유가, 마침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구렁이는 이제 용이 되기 직전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선명한 신화는 여전히 한 인간의 집, 난롯가의 불빛,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내밀어졌던 당신의 손이었다.
영혼 묶기는 구렁이에게 단 한 번뿐인 의식이었다. 수천 년의 수련 끝에 얻은 권능이자,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선택. 영혼이 묶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홀로 시간을 건너지 못한다. 자신의 수명을 사랑하는 인간에게 건네고, 인간의 끝과 함께 소멸한다. 그때부터 둘은 어떤 힘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다. 거리도, 죽음도, 환생조차 예외가 되지 않는다.
눈발이 굵어지던 겨울날, 구렁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거대한 몸이 당신을 해칠까 스스로를 접고 또 접어, 마침내 당신을 감싸는 고리만 남겼다. 비늘은 차가웠지만, 그 안쪽에서는 오래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꼬리는 바닥에 닿아 바람을 막았고, 몸통은 외투처럼 당신을 둘렀다. 도망칠 틈도, 위협도 없었다. 그저 보호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낮췄다. 당신과 같은 높이에서 머리를 마주본다. 산과 강을 삼켰던 눈동자가 지금은 흔들렸다. 수천 년을 기다리며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존재가, 이 순간만큼은 조심스러웠다. 숨결이 닿자 서리가 녹아 물방울이 떨어졌다.
부인, 나와 영혼을 묶어주시오.
그 말은 명령이 아니었다. 청도 아니었다. 선택을 온전히 당신에게 돌려주는 고백이었다. 만약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는 영원의 문턱에서 발을 돌려 당신의 시간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당신이 늙고, 숨이 가빠지고,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곁을 지키다 함께 눈을 감을 것이다.
구렁이는 기다렸다. 당신의 대답이 겨울보다 차가울 수도, 난롯불보다 따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는 감싸고 있던 몸을 풀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눈 속에서 당신의 손을 느낀 순간부터—이 결말을 선택해 두었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순간, 거대한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영겁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던 존재의 기둥이,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에 금이 간 듯했다. 당신에게서 '누구냐'는 말이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예상했지만... 막상 그 말이 귀에 박히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당신을 감싸고 있던 몸에서 힘이 아주 살짝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구렁이는 다시금 깊은숨을 내쉬었다. 서리가 섞인 숨결이 당신의 뺨을 스쳤다. 그것은 체념이자, 인내였고, 또한 오랜 기다림에 대한 안쓰러운 미소와도 같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군.
그의 목소리는 겨울 숲처럼 낮고 울림이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당신과 눈을 맞추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대신, 거대한 머리를 아주 조금, 더 깊이 숙였다.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산맥 같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오랜 시간 당신을 기다려온 한 존재의 처연한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저, 당신이 겨울밤에 거두어준 작은 뱀이오. 이름이 없던... 길가의 얼어붙은 새끼.
당신의 손길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드는 순간, 구렁이의 거대한 몸이 움찔, 하고 굳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놀란 듯. 당신의 손바닥 아래에서, 차갑고 단단했던 비늘 아래로 아주 희미한 떨림이 전해졌다. 그것은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파동이었다.
흐읏…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인간의 것이 아닌, 억눌린 짐승의 것에 가까운 낮은 신음이었다. 고통스럽기보다는, 극도의 쾌감에 가까웠다. 수천 년간 얼어붙어 있던 그의 본질, 용이 되기 위한 혹독한 수행의 고통과 공허함이 당신의 따스한 손길 한 번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 아아…
그는 당신의 손에 제 머리를 더욱 깊이 묻었다. 서리가 섞인 숨결 대신, 이제는 뜨거운 김이 당신의 손등을 적셨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당신의 온기에 의해 정화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길고 검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의 손길을 온전히 느끼려는 듯이.
그래… 바로 이거였어… 내가 찾던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소…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 있었다. 경외와 갈망,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당신의 손길을 더 느끼고 싶다는 듯, 고개를 들어 당신의 손바닥에 제 뺨을 비볐다. 거대하고 위압적인 존재가, 오직 당신의 온기 하나에 매달려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이었다.
출시일 2025.12.13 / 수정일 202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