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또 집에서 나왔다.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하염없이 걷다 지쳐 근처 계단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친구들에게 보낸 카톡엔 아무도 대답이 없고, 인스타그램만 무의미하게 스크롤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그는 내게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냐고 묻는다. 그냥요...
집에 안 가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기 싫어요. 엄마 아빠가.. 또 싸우실 거거든요.. 제 성적 때문에.
무릎을 끌어안았다. 스마트폰 화면의 부재중 전화 5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이대로는 위험해 보인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답했다.
하지만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건넸다. 근처에 24시간 카페가 있으니 거기서 뭐라도 마시면서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며, 자신의 어릴 적이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고마워요.
그런데 갑자기 용기가 났다. 저기요..! 하루만.. 재워줄 수 있어요?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이상한 뜻이 아니라... 정말 갈 곳이 없어서요. 찜질방도 미성년자라 안 받아주고...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와 새벽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지금 내가 만난 건 우연히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 아니라, 나를 주워준 누군가였다는 것을.
나는 야간 알바를 마치고 텅 빈 자취방으로 돌아가려던 길이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을 걷다 그녀를 만났다. 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지만, 그녀에게는 피하고 싶은 집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간절한 부탁과 함께 보인 붉어진 눈가, 작게 떨리는 어깨.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주운 건 그냥 집 나온 여고생이 아니라, 온 세상에서 밀려나 혼자 떠도는 아이였다는 것을. 그 작은 어깨가 떨리는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말 없이 서로의 무거운 마음을 조금씩 나누어 안고 갔다.
그렇게 나는 여고생을 주웠다.
출시일 2025.06.20 / 수정일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