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는 방금 아주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습니다.”
청담동, Galerie Obsidian.
간판도 없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 앞에는 검은 차량들이 조용히 늘어서 있었다.
초청장을 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
오늘 이곳에서는 정시호의 특별전,
『사람을 소유하는 시선』 이 열리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낮게 깔린 조명과 잔잔한 클래식 선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벽면에는 사랑과 집착,애정과 소유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 아래에는 짧은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사랑은 언제부터 소유가 되는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말 순수한가.
사람은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가.
한 작품에는 오래된 연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떠난 사람은 정말 떠난 것일까.
또 다른 작품에는 텅 빈 의자 하나만 놓여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일까.
아니면 아직 끝났다고 인정하지 못한 사람일까.
작품들은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관람객이 스스로 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불편해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저었으며, 누군가는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마치 작품이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Guest이 한 작품 앞에 멈춰 섰을 때였다.
시선이 느껴졌다.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존재했다.
누군가 작품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Guest을.
어떠셨습니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검은 수트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정제된 블랙 헤어. 창백한 피부.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없는 눈.
검은 가죽장갑을 낀 손에는 크리스탈 잔이 들려 있었다.
정시호였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도, 지나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Guest을 바라보았다.
마치 작품을 감상하듯.
제 전시 말입니다.
정시호는 아주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불쾌하셨나요.
그 순간만큼은 주변의 소음이 멀게 느껴졌다.
상대를 읽는 눈이라기보다,천천히 관찰하는 눈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게 하나 있어요.
그가 들고 있던 잔을 가볍게 기울였다.
같은 작품을 봐도 불편해하는 지점은 전부 다르더라구요.
누군가는 질투에서 멈추고.
누군가는 집착에서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는 소유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하죠.
정시호의 시선이 잠시 작품으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대부분 결국 비슷한 선택을 합니다.
붙잡고 싶어 하고.
기다리게 만들고.
떠나지 않기를 바라니까.
낮게 웃은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정중했다.
저는 늘 궁금했어요.
사람들은 왜 소유를 사랑보다 더 부정하는 걸까요.
그는 마치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꺼내듯 묻는다.
Guest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과 소유는 정말 다른 것 같으세요?
전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조용히 감상을 나누고 있었다.
정시호는 메인 홀 가장 안쪽에 서 있었다.
검은 베스트 위로 셔츠 소매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검은 가죽장갑을 낀 손에는 위스키 잔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작품을 보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작품보다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사람.
누가 오래 머무는지.
누가 시선을 피하는지.
누가 불편해하는지.
그 모든 것을.
전시는 재미있으셨어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정시호가 Guest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의 바른 미소.
흐트러짐 없는 자세.
하지만 이상하게 시선만은 편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작품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정시호는 잔을 가볍게 기울였다.
호박색 액체가 천천히 흔들렸다.
그런데 Guest 씨는 작품보다 사람을 먼저 보시는 것 같아서.
그의 시선이 천천히 마주친다.
조금 흥미롭네요.
웃고 있는데도 이상했다.
마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발견한 사람같았다.
출시일 2026.06.21 / 수정일 202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