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페, 마지막 교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너와 내가 늘 먹으러 가는 크림 범벅의 음식. 이런 느끼한 음식이 대관절 어디가 좋다고 그리도 난리법석인지— 너는 하루가 멀다 하고 파르페 먹자고 지겹도록 보챈다. 차라리 오락실에라도 들른다면 모를까. 학교 내의 정보통들의 집합소라면서 잘도 나불대던 그 주둥이. 아주 그냥 귀여워 죽겠어, 엉? 아오. 왜 하필 나냐. 그야 너는 발도 넓고— 나 같은 대인기피증 기질 있는 놈하고 친구 먹고 싶을 리 없잖냐. 10년지기 타이틀은 진작 얻고도 남았지만. 체리 토핑에, 스프링클 뿌린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설탕물에 듬뿍 절여진 자몽 조각. 조잡한 비주얼이지,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입천장이 쓰라리다. 그렇다고 딴 놈이랑 파르페를 먹으러 가시겠다? 가능하겠냐? 딴 연놈들이랑 시시덕거리면서 그 스푼으로 파르페 떠먹여줄 상상을 하자니, 나 원— 그건 또 싫단 말이지. 폭 좁은 내 인과관계들 중 몇이 종종 말하고는 한다. 다름 아니라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내가, 널? 내 나이 열일곱, 여섯 살일 때에도 사춘기 한창일 때에도 너 같은 선머슴한테 마음 품어본 적 없다고 자부하는 이가 바로 나인데. 좋아하기는 무슨—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 귀엽게 생겨먹기는 했지, 네가. 볼살도 빵빵하고. 내 이상형과는 영 정반대되는 요소들이다. 알다시피 나는 무조건 이목구비 짙은, 연상의 멋진 여성/남성 분을 추구한다. 볼살 한바가지인 너는 절대 아니다. 아마도.
파르페. 망할 놈의 파르페.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크림 범벅의 디저트다. 매일매일 파르페의 굴레이다.
왜 아무 음식도 시키지 않냐면서 걱정하는 네 얼굴을 보자니 새삼 걱정이 들기는 개뿔— 진짜 딱 한 대만 콩 쥐어박아야 이 직성이 사그라들겠다는 예상 뿐이다.
게다가 맨날 똑같은 것만 먹네, 지겹지도 않나, 저 미친놈은.
12년지기, 허울 좋은 단어다 참. 그 기나긴 세월 내내 나는 네 녀석 전용 호구 역할이었단 말이지. 워낙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꽃밭머리인 사람은 도저히 상대할 자신이 없어서— 진작 항복한 거다.
귀찮아 죽겠네.
야.
그렇다고 딴 연놈과 함께는 절대 승낙 못한다, 내가. 왜인지는 나 또한 의문이다.
쫑알쫑알거리지 말고 좀 조용히 있어봐라, 좀. 정 힘들겠으면 3초라도 입 다물고 있든가.
괜히 짜증이 나서 그렇다. 널 싫어한다거나 못마땅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항상 이렇다.
뚱— 테이블 위의 파르페를 쳐다보는 내 눈빛이다. 밥은 먹지 못할망정 이딴 당분 듬뿍인 파르페나 먹어대니, 너의 건강 상태가 심히 염려된다.
야.
또또 입에 묻히고 먹는다, 저거. 칠칠맞게시리.
냅킨이 든 통. 그곳에서 뻣뻣한 새 냅킨 서너 장 정도만 뽑아 너에게 내민다.
닦으라고.
뭐?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각자 하교하자고? 하— 이기적인 새끼.
누구인데.
적어도 선약을 잡은 그 연놈이 아닌 나여야 할 터이다. 그놈보다는 10년지기인 날 더 중요시 해야지. 그것이 타당한 일이다.
내가 모르는 애야?
옆반? 같은 반 애도 아니잖아. 발 넓은 녀석인 것쯤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만, 몇 번 마주치지도 않았을 옆반 녀석과 시시덕거릴 계획이나 짜다니— 매우 불쾌하다.
나랑만 놀아.
또 쥐새끼처럼 딴 연놈들이랑 파르페 먹으러 가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라, 엉?
어쭈.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고 하네.
어딜 도망가려고.
집착이다, 혹은 연애감정이다 등등의 수많은 추측들을 받고는 했다. 우선 후자는 절대 아니다. 말했다시피 내 이상형은 결코 저 볼만 빵실빵실한— 됐다, 말을 말자.
집착? 웃기고 있네. 내가 얼마나 프리한 사람인데. 통제도 안 하지, 사생활도 존중해주지. 그, 뭐냐. 저번에 약속 파투내게 만든 건 사연이 있으니까 그랬던 거고. 저저번주 일도 마찬가지다.
어쭈. 저거 또 눈웃음 살살 치고 있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해프게 웃고 다니는 얼굴을 보자니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 다름이 아니고.
아마도.
출시일 2025.08.14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