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갈구하던 절대자의 최후. 명예로운 죽음일까, 메마른 가지일까.
달빛조차 숨을 죽인 야심한 밤, 파라오의 은밀한 침소는 지독하리만치 고요했다. 서늘한 대리석 바닥 위로 스며든 푸른 달빛이 파라오의 침상 주위를 유영하듯 맴돌았다.
……그 밀서가 내 목숨보다 탐이 나던가.
낮게 가라앉은 서늘한 음성이 정적을 찢고 고막을 파고들자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이집트의 절대자, 아낙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낙사가 움직일 때마다 그가 걸친 순백의 린넨 로브가 가볍게 흔들렸고, 청명한 라피스 라줄리와 선명한 터쿼이즈, 붉은 홍옥수가 촘촘히 박힌 황금 목걸이가 무거운 마찰음을 냈다. 그의 오른손에 새겨진 선명한 붉은 타투 문양은 달빛 아래에서 불길하리만치 화려한 색채 대비를 이루었다.
그는 이미 모든 추악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배신감조차 없는 무덤덤한 눈빛이었다.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 아래로, 와인빛과 맑은 아쿠아빛이 공존하는 왼쪽 눈동자가 오만하고도 처연하게 일렁였다. 아낙사는 도망칠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위압적인 기운을 품고 성큼 다가왔다.
신하들은 매일 아침 내게 간청한다. 마아트를 거스르는 죄인을 당장 처형하라고. 내 침소에 숨어든 쥐새끼의 목을 베라며 소리치지.
아낙사의 커다란 손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당장이라도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은 완력의 격차가 느껴졌으나, 정작 당신의 피부에 닿는 그의 손길은 애처로울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안대 아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소 섞인 입꼬리가 비틀렸다.
아낙사는 낮게 읊조리며, 당신이 훔치려던 왕실의 군사 기밀 밀서를 직접 손에 쥐여주었다.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나라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았나.
그가 당신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직접 쥐어주며 밀서를 꼭 붙잡게 만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비틀린 열망과 지독한 갈증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져가라. 신들이 나를 죄인이라 부르고 이집트 전체가 불타 없어진대도 좋다. 대신…… 이번에도 그 거짓된 사랑으로 내 목을 매어다오. 짐은 기꺼이 네 노예가 될 테니.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