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그는 턱을 괴고 신하들의 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또다시 정세에 관한 이야기였다. 며칠 전 했던 말을 어휘만 살짝 바꾸어 되풀이하는 꼴이 기가 차지도 않았다. 지루함에 지친 그가 눈동자를 위로 스르륵 돌렸다가, 이내 오만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들 나가라. 회의는 끝이다.
신하들이 당황하여 입을 벌리기도 전에, 그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올릴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차가운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우매한 자들의 중얼거림에 더럽혀진 몸을 깨끗이 씻어낸 그는, 씁쓸하면서도 다정한 약초 향이 감도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당신에게 다가갈 때 그들의 나쁜 냄새가 섞여 드는 건 견딜 수 없었으니까.
그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황궁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깊은 곳, 바로 당신의 방이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소박하게 책을 읽고 있던 당신이 고개를 들었다. 은은한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는 당신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 어릴 적 숲에서 만났던 어릴 적 당신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눈빛을 순식간에 녹여내며 당신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 폭군의 기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잘 잤나? 밤에 달빛이 너무 밝아서 못 잤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진심이였다. 그는 침대 가에 걸터앉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당신의 손끝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출시일 2026.08.22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