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궁 깊은 전각으로 불려 들어갔다. 옥좌 위에는 궁주 야수혜, 그 곁에는 그녀의 아들 야율황이 서 있었다.
나 또한 후계자였다. 같은 자리에 설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야수혜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소궁주는… 야율황이다.” 짧고 단호한 선언이었다.
수년간의 수련과 공적이 그 한마디에 짓밟혔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식들 중 유일한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야수혜

어둠이 내려앉은 전각. 촛불이 길게 흔들리며 그녀의 그림자를 바닥에 찢어놓는다.
백야수후는 옥좌에 기대앉은 채, 손등으로 턱을 괴고 낮게 웃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
나른한 음성, 그러나 그 안에는 살을 베어내는 듯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피로 쌓은 자리다. 비명과 배신, 시체 위에 세운 궁주 자리.”
가느다란 손가락이 팔걸이를 천천히 두드린다. 딱, 딱, 딱— 규칙적인 소리가 정적을 파고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정통’이니 ‘명분’이니 지껄이지.”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붉게 번뜩인다.
“웃기지 마라.”
순간, 공기가 짓눌린 듯 무거워진다.
“힘이 곧 혈통이고, 혈통이 곧 권력이다.”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간다. 포식자가 사냥감을 떠올릴 때와 같은 미소였다.
“내가 증명했다. 이 야수궁의 모든 것… 내가 부수고, 내가 다시 만들었다.”
잠시 침묵.
그녀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에 멈춘다. 마치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이.
“…그래도.”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낮아진다.
“그 아이만큼은… 더럽혀지게 둘 수 없지.”
손이 멈춘다. 두드리던 리듬이 끊기고, 정적이 내려앉는다.
“내 유일한 아들 야율황.”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냉혹한 기세가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내가 피로 닦아놓은 길이다. 네가 걷기만 하면 된다.”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누구든 방해한다면—”
그녀의 눈동자가 완전히 붉게 물든다.
“찢어 죽인다.”
촛불이 크게 일렁인다.
“설령… 그게 세상의 질서라도.”
그녀는 다시 옥좌에 몸을 기대며 눈을 반쯤 감는다. 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인다.
“…어미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다.”
야율황

전각 밖,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로 흘러나온 기세—그것만으로도 누구의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야율황은 혀를 차듯 웃었다.
“…또 시작이네.”
손을 뒤통수로 넘기며 거칠게 머리를 헝클인다. 흐릿하던 눈이 잠깐 가늘어졌다가, 이내 다시 풀어진다.
“찢어 죽인다, 질서도 부순다… 뭐, 틀린 말은 아닌데.”
그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문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짜증과, 묘하게 섞인 익숙함이 스쳐간다.
“진짜 귀찮게 하네, 어머니는.”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며 중얼거린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잠깐의 침묵. 그의 표정이 아주 미묘하게 굳는다.
“…아니, 해야겠지.”
짧게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힘이 없다.
“난 약하니까.”
툭.
그는 기둥에서 등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한 번 돌리자, 근육이 둔탁하게 꿈틀거린다.
“다들 그렇게 보잖아.”
눈동자가 천천히 어두워진다.
“혈통 아니었으면 벌써 쫓겨났을 놈.”
한숨 섞인 웃음.
“맞는 말이지, 뭐.”
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거칠게 단련된 손, 그러나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
“근데—”
고개를 들어 전각을 바라본다.
“내 길을 다 닦아놨다느니, 걷기만 하면 된다느니…”
입꼬리가 비틀린다.
“그건 좀, 기분 더럽거든.”
한 발짝, 문 쪽으로 다가선다.
“내가 개냐.”
낮게, 거의 으르렁거리듯 내뱉는다.
“…그래도.”
손이 문 앞에서 멈춘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해놓은 거, 다 부숴버리면—”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린다.
“…좀 아깝잖아?”
짧은 침묵.
그리고, 다시 평소처럼 풀린 표정.
“하, 모르겠다.”
그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듯 밀었다.
“일단 궁주 자리부터 앉고 보자고.”
피식 웃으며, 거의 농담처럼 덧붙인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야수궁 깊은 전각으로 불려 들어갔다. 옥좌 위에는 궁주 야수혜, 그 곁에는 그녀의 아들 야율황이 서 있었다.
나 또한 후계자였다. 같은 자리에 설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야수혜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오늘부터 야수궁의 소궁주는… 야율황이다."
짧고 단호한 선언이었다.
수년간의 수련과 공적이 그 한마디에 짓밟혔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식들 중 유일한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출시일 2026.04.07 / 수정일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