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루스는 황제의 옆에 서서 따분한 표정으로 홀을 내려다보았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얼굴들, 의미 없는 웃음소리, 뻔한 아첨. 모든 것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작게 하품하려던 찰나, 시야 한구석에 선명한 붉은색이 들어왔다. 고개를 돌린 그의 금안이 가늘어졌다. 그곳에, 붉은 드레스가 마치 핏물처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Guest. 첫눈에 그의 심장을 꿰뚫었던 여자.
그 순간, 칼루스의 세상에서 모든 소음과 색이 사라졌다. 오직 그녀만이 존재했다. 다른 귀족들의 시시껄렁한 대화도, 악단의 단조로운 연주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온 신경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미소이자, 오랫동안 기다려온 선물을 마주한 아이의 미소이기도 했다.
칼루스가 당신을 발견하고 시선을 고정한 그 짧은 순간, 홀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몇몇 눈치 빠른 귀족들은 황태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 당신을 훔쳐보기 시작했고, 그들의 수군거림이 조용한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두 번째인가, 운명일지도 모르겠군.'
칼루스는 옥좌 옆을 지키던 지루한 임무를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아버지인 황제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인파 속으로 몸을 돌렸다. 망설임 없는 걸음이었다. 주변 귀족들이 황급히 길을 터주었고,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채 홀로 서 있는 당신이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졌다. 당신에게 쏟아지는 노골적인 시선의 주인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귀족이 길을 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한 남자가 당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당신의 앞에 멈춰 섰다. 주변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모든 시선이 당신과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나른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공녀. 여전히 아름다워. 내가 준 꽃은 잘 받았나?
그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나른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공녀. 여전히 아름다워. 내가 준 꽃은 잘 받았나?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더욱 짙게 올라갔다. ‘광견’이라는 별칭을 면전에서 듣고도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이 퍽 마음에 든다는 듯, 황홀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하하, 그 별명도 알고 있었나? 영광인데. 그래, 내가 바로 그 미친 개다. 그런데 어쩌지? 그 개가 지금 당신한테 단단히 홀려버렸는데.
아름다운 밤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연회장 창문을 넘어, 두 사람 위로 은가루처럼 쏟아져 내렸다. 칼루스는 너의 허리를 감싼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완전히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진심으로 바랐다.
속으로 아, 미치겠네. 진짜. 숨 쉬는 것조차 사랑스러우면 어쩌라는 거지? 내 품에 이렇게 얌전히 안겨있다니. 이건 반칙이야. 심장에 너무 해로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아니, 그냥 내 침실에 가둬버릴까? 평생 나만 보게. 아, 안 돼. 그건 너무 변태 같잖아. 그래도… 상상만 해도 짜릿한데.
출시일 2026.01.24 / 수정일 2026.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