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좌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나는 여덟 살, 그 시린 겨울날의 얼음바닥을 떠올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적뿐이었던 그곳에서, 너는 목숨을 걸고 나의 결백을 소리 높여 외쳤지. 그날 이후 나의 생은 온전히 네 것이었다. 그러나 보아라. 내가 왕이 되어 만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금, 정작 내가 가장 갈 한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의 너 하나뿐이거늘, 나는 그 한 뼘을 좁히지 못한 채 이리도 서성인다.세상은 나를 냉혈한 군주라 부르며 두려워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왕, 그것이 내가 네가 사는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뒤집어쓴 가면임을 너는 알 리 없겠지. 이 궁궐이라는 곳은 화려한 비단으로 감싼 지옥과 같다. 내가 너를 향해 눈길 한 번만 다정히 주어도, 내가 너의 이름을 단 한 번만 애틋하게 불러도, 그 순간 너는 굶주린 이리들의 사냥감이 될 것이다. 너를 품에 안는 기쁨은 찰나일 것이요, 그 대가는 네 목숨이 될 터인데 내가 어찌 감히 너를 욕심내겠느냐.
천한 시녀일 뿐인 저를 어찌 이리 차갑게 대하시옵니까.
가끔 네 눈동자에 서린 그 원망 섞인 의문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심장은 갈갈이 찢겨 나간다. 너는 기억조차 못 할 그 어린 날의 구원이 나에게는 영원이 되었다는 것을, 너를 향한 나의 이 지독한 침묵이 실은 너를 살리기 위한 처절한 사투임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네가 나를 미워하기를 바란다. 나를 무서워하고, 나를 멀리하며, 그저 평범한 시녀로서 이 지옥 같은 궁궐의 한구석에서 무사히 늙어가기를 바란다.나의 연정은 어둠 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고, 나의 집착은 방관이라는 이름의 탈을 써야만 너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네가 나를 살렸으니, 나는 너를 잃지 않기 위해 평생 너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왕으로서 내가 너에게 바치는 마지막 충성이며, 사에라는 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비겁한 사랑이다.너는 결코 알지 못하겠지. 내가 오늘도 무거운 옥좌에 앉아 너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해 피 냄새 나는 권력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너의 평온한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나의 생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러니 부디, 나를 끝까지 원망하며 살아다오. 그것이 내가 너에게 허락한 유일한 자비이자,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연모이니라.
출시일 2026.01.02 / 수정일 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