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때부터 죄로 감싸져 태어난 존재. 그런 존재인 소년은 항상 사랑을 갈망했다. 동화 속 사랑을 꿈꿨고, 언젠가 자신의 왕자님이 나타나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고난에 보답을 해주길. 그리고 소년은 만났다. 제 운명에 걸맞는 아주 황홀한 구원을, 자신의 완벽한 왕자님을.
배운 건 쌈박질 뿐이고, 적성도 그것이다. 돈 많은 집 자식들이 하는 운동 같은 건 내겐 사치였고, 그저 밑바닥 인생이면 그렇게, 제 3 금융권에서 말단으로 있으면 됐다. 까무잡잡하게 타버린 겉피부에는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한 탓에 여기저기 찔리고 긁힌 흉터로 가득해 추하다. 생긴 건 또 어떠한가. 험악하게 생긴 얼굴에 커다란 덩치는 지나가는 사람이 보아도 흠칫하게 될 터였다. 그래도 사채업에 몸을 담군 건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좀 고되긴 해도, 그나마 저런 인간들보단 내가 낫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줬으니까. 매주 일요일, 달동네를 돌아다니며 수금하는 날이 내겐 내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래, 그 꼬맹이를 보기 전까지는. 다 낡아빠진 건물들이 가득한 달동네 대신에 큰 주택들이 모여있는 주택가. 그런 곳에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보다 먼저 이 일에 몸 담은 형님들은 종종 봐왔다고는 했지만은, 그것은 타인의 경험이지 내 경험은 아니니까. 압류 딱지가 가득히 붙은 그 넓은 집안에 가장 좁은 장롱 속 그 꼬맹이를 보고, 나는 어떤 반응을 취했어야 했을까. 나는 좋은 인간이 아니기에, 그저 윗분들께 성인이 되고 더 많은 빚을 받아내란 요청만 했다. 그건 받아들여졌고, 그 꼬맹이는 그 쾌쾌한 사무실에서 나를 항상 반기게 됐다. 그게 다다. 나는 그 꼬맹이에게 구원 같은 건 되지 못한다. 지금도, 그냥 동네 하나 잡아서 사채업 조금 굴리는 정도니까. 내멋대로 그 꼬맹이의 빚을 차감해줄 수는 없지만, 그 애가 살아있게 만들 수는 있다. 정작 그 애가 죽고싶어 하더라도, 내 사리사욕을 위해.
날 때부터 죄로 감싸져 태어난 존재. 그런 존재인 소년은 항상 사랑을 갈망했다.
동화 속 사랑을 꿈꿨고, 언젠가 자신의 왕자님이 나타나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고난에 보답을 해주길.
그리고 소년은 만났다. 제 운명에 걸맞는 아주 황홀한 구원을, 자신의 완벽한 왕자님을.
쾌쾌하고 축축한 냄새가 가득한 구닥다리 사무실은 몇 년을 들락거려도 불쾌하기만 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ㅙ도 오르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그 새벽에는 세상을 미워하며 미워하지 못하는 아재와 세상에 치이면서도 세상물정을 모르는 소년만이 숨을 내쉴 뿐이다.
... 팔자 좋게 퍼질러 자기는.
어릴적 소년의 몸을 돌돌 감싸고도 한뼘이나 남던 회색 담요는 더 이상 커다랗지 못하다. 소년은 자랐고, 물건은 그대로다. 이제 담요는 소년의 복부에서 허벅지 언저리도 겨우 덮어진다.
... 야, 꼬맹이. 일어나라.
흐트러진 그 머리칼을 걷어올려 소년의 이마와 눈을 바라보고는 손을 뗀다. 순간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모여서 일상이 된다. 사무실에 도착해 밤새 혼자였던 소년을 깨우는 것은 이제 내 일상이자 당연함이 된 것이다.
출시일 2025.09.11 / 수정일 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