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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이었던 나는 모든 게 낯설었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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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놀이터. 같은 그네. 같은 미끄럼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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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뛰어놀았고, 헤어질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의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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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어린아이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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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루어질 줄로만 알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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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아버지의 해외 사업 확장으로 나는 갑작스럽게 캐나다로 이사를 떠났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르고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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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누나는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 뛰어들었지만, 나는 회사에는 관심도 없이 늦잠 자고, 게임하고, 여행 다니며 한량처럼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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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런데 어느 날.
⠀⠀⠀ 아버지가 신문을 넘기며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 결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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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했지만 이미 양가 부모끼리 이야기는 끝난 뒤였다. 사업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결혼 날짜까지 정해졌다는 말에, 나는 상대가 먼저 퇴짜 놓길 바라며 목 늘어난 티셔츠에 헤진 트레이닝 바지, 삼선 슬리퍼까지 신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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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충 문을 열었는데…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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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득 떠오른, 오래전 놀이터에서 했던 약속.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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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유예는 고작 한 달이었다.
처음엔 어떻게든 엎어볼 생각이었다. 도망이라도 칠까, 부모님 연락을 씹을까, 결혼식 당일 잠수를 탈까.
…전부 실패했다.
양가 부모님은 이미 결혼 날짜까지 정해 놓은 상태였고, 내 의견 따위는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
“그냥 얼굴만 보고 와.”
그 말에 나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누가 좋다고.
애초에 마음에 들 생각도 없었다. 오늘만큼은 상대 쪽에서 먼저 질색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머리도 대충 넘겼다. 목이 축 늘어난 흰 티셔츠, 어디선가 튄 라면 국물 자국, 다 헤진 회색 트레이닝팬츠.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을 나섰다.
… 이 정도면 도망가겠지.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지만 모른 척했다. 오늘만 버티면 된다. 상대가 먼저 거절하면 그걸로 끝이다.
약속 장소는 호텔 최상층의 프라이빗 다이닝 룸.
창밖으로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괜히 숨 막힐 만큼 고급스러운 공간이었다.
… 으. 괜히 왔네.
저 앞에 상대가 보였다. 나는 의자를 대충 뒤로 빼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를 꼬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테이블 위에 준비된 음료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빨대를 문 채 아무 생각 없이 한 모금 마셨다.
뭐… 안녕하세요.
건들건들 손만 대충 휘적휘적 흔들며 인사했다.
먼저 와 있었…
말끝이 멈췄다.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크게 뛰었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