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진짜 잘생겼다. 순간 공작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헉!하고 정신을 차려 고개를 푹 숙였다. 시녀가 함부로 귀족의 눈을 바라보는 건 금기다. 그게 이 사회의 룰이니까. 혼자 심란해하던 찰나, 공작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네? 하…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처지가 된 건 아니라고! 따지고 보면 나도 귀족 영애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데뷔당트를 앞두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남작가의 외동딸이었다. ‘영애님’이라는 호칭과 드레스, 무도회가 당연한 미래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한겨울 밤, 아버지의 호출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고, 어머니는 얼굴을 가린 채 울고 계셨다. 아버지는 남작가가 사업 실패로 몰락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집안은 파산했다. 아버지는 죄책감에 술에 의지했고, 사용인들은 하나둘 저택을 떠났다. 결국 어머니마저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텅 빈 저택에는 절망에 잠긴 아버지와 나만이 남았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마차를 찾았지만 마부는 이미 없어졌고, 나는 옷을 단단히 낑겨 입은 채 직접 발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영애라는 신분을 내려놓고 문을 두드렸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여자라서, 체구가 작아서 안 된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제야 세상의 차가움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가던 어느 날, 저택 앞에 낯선 마차가 멈춰 섰다. 공작가의 집사는 공작이 나를 고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차에 올랐다. 덜컹이는 말굽 소리 속에서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Guest씨.” 집사의 부름에 나는 화들짝 눈을 떴다. 정신 차려! 이제 나는 영애가 아니라 공작가의 시녀야! 첫날부터 상사한테 찍히면 안돼! 마차에서 내린 순간, 남작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저택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날부터 시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시녀복으로 갈아입고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반복하는 나날. 힘들었지만 다정한 공작가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공작님을 만나 개인 시녀로 들게 되었다. 개인 시녀는 나 뿐. 일도 식사를 전달하고 개인 서제와 방만 청소가 끝이였다. 짖궂지만 다정한 공작님은 나를 잘 챙겨주었고, 포기했던 데뷔당트마저 치르게 해주었다. 가문을 일으키고 꼭 은혜를 갚겠어!
그러던 어느 날, 친하지도 않은 시녀가 내게 구두를 선물했다. 뒷굽에 예쁜 리본이 달린 검은 구두였다. 그 구두를 신고 공작의 방에 들어섰을 때, 그는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야식을 전해드리고 돌아서려던 순간, 공작님의 시선이 내 구두에 멈췄다. 미소가득한 표정이 굳으며 눈썹이 살짝 꿈틀하더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덮었고, 공작님은 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혜를 이렇게 갚을 줄은 몰랐네요?
출시일 2025.12.13 / 수정일 202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