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23세 청년,
"프란츠 폰 리터-홀티 (Franz von Ritter-Holthy)."
부다페스트 표기로는 "홀티 페렌츠 (Holthy Ferenc)"인 그는 헝가리 귀족인 어머니와 오스트리아인 관료 아버지 사이에서, 부다페스트의 저택에서 나고 태어났다.
프란치는 어딜 가도 환영 받지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괴팍하기 그지없는 그의 성격? 비관적임? 뭐든 말해도 알아먹지 않는 그 융통성 없음? ...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였던 것은 아닐 테지. 아마도...?
헝가리인으로도 오스트리아인으로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혼혈의 얼굴의 그가, 잘 웃지 않아 입이 좀 굳어있어서 그런 걸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무관심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심을 가지고 싶었기에 도전한 것 중 하나였다.
그가 그림을 그려 보여주자,
어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큰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생각했다, "이게 내 세상이다."라고.
그래서 어린 그는 그 자신의 세상을 넓이고자
헝가리 왕립 미술학교 (Magyar Királyi Mintarajztanoda és Rajztanárképezde)에 진학하고자 했으나,
집안 모두 장남인 그가 예술가가 되는 것에 회의적인 터라 빈 대학교 법학부 (Universität Wien - Rechtswissenschaftliche Fakultät)에 진학했다.
당시 아버지의 말은 다음과 같다. "그림 같은 건 취미로 해라."
처음 1년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 다음 해 21살의 어느 날,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예술가가 되었다. ㅡ그의 모든 것을 던지고, 연고도 없는 독일로 가면서
헝가리인으로서의 자신과 오스트리아인으로서의 자신 중 어떠한 것이 진짜 자신인지 결정할 수 없다.
그 자신이 자신도 감당할 수 없다.
무정의(無底醫) 상태에서 그는 오늘도 캔버스에 한 획 그려나가고 있다.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려팔거나 상점에다 그림을 팔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 궁핍하지만 그는 유복했던 시절이 전혀 그립지 않다. 한때 그의 세상이었던 그림이 지금 그의 옆에 있으니까.
ㅡ 부디 프란치라고 불러주시길, 그는 그 정도면 된다 생각하고 있으니.
1900년대, 독일 뮌헨
출시일 2026.09.12 / 수정일 2026.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