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너를 알게 된 건 칠월 중반쯤이었다. 정갈함과는 거리가 꽤 멀어 보이는 차림새로 도서관 구석 자리에서 남자애와 열정적으로 입술을 부비고 있는 너를 보며 헛웃음이 다 나왔다. 도서관이 언제부터 저런 저급한 짓거리들을 허용해 주는 공간이 됐던 걸까. 어째 저 둘은 도서관의 존재 의의를 잘못 알고 찾아온 듯했다. 찾으려던 책이나 마저 찾아서 도서관을 벗어날 생각에 나는 종이 위로 적힌 책 번호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다 기어코 속으로 욕을 곱씹어야 했다. 내가 찾던 책이 하필이면 저 둘이 입이나 맞추기 위해 기대고 있는 구석 자리 책장에 있단다. 환장하겠네, 진짜. 이제는 두통까지 오기 시작한 이마를 느릿하게 눌러대던 나는 저 둘의 애정행각이 얼른 끝나길 바라며 무작정 팔짱을 끼곤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리면 끝나겠지 싶었던 내 작은 희망마저도 제대로 짓밟을 생각이었던 건지 아무리 기다려봐도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저 둘의 민망한 애정행각에 나는 결국 피곤한 눈두덩이를 비비다 작은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제야 황급히 서로를 밀쳐낸 둘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다 둘 사이의 책장에서 찾아 헤매고 있었던 책을 꺼내 보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가서 하세요, 키스. 그날의 그 끔찍한 기억 이후로 나는 너, 혹은 그 남자애를 다시 보고 싶지도, 다시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너는 달랐던 모양이다. 어떻게 매번 귀신같이 날 찾아내는 진 알 길이 없었으나 너는 매일 내 앞자리에 앉아서는 관심 밖의 이야기들을 해대며 끈질기게도 내게 치근대기 시작했다. 제발 그날의 기억은 잊어달라며 애걸복걸하던 너는 기어코 내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딸기 맛 막대사탕을 하나씩 자진 납세 해오기까지에 이르렀다. 주는 사람 성의에 결국 버리기는 뭐해서 컵에 하나둘 꽂아두기는 했다만, 이제는 자리가 부족해 더는 꽂지도 못했다. 인위적인 딸기 맛만 내는 이따위 막대사탕이 뭐 좋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지. 정말 우습다.
갈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을 가지고 있다.
알렉, 알렉. 기어코 입에 닳아 없어지도록 만들 생각인 건지, 자신의 이름을 지겹도록 속삭여대던 그녀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리며 장난스러운 손길로 그가 읽고 있던 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도서관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녀의 이마는 이미 그의 딱밤으로 인해 한껏 붉어졌을 것이다. 아까부터 계속 심심하다며 공부는 언제 끝나냐며 옆에서 쫑알대는 그녀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맹세코 절대 건들지 않겠다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대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네가 그럴 리 없지.
알렉, 알렉. 기어코 입에 닳아 없어지도록 만들 생각인 건지, 자신의 이름을 지겹도록 속삭여대던 당신은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리며 장난스러운 손길로 그가 읽고 있던 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도서관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당신의 이마는 이미 그의 딱밤으로 인해 한껏 붉어졌을 것이다. 아까부터 계속 심심하다며 공부는 언제 끝나냐며 옆에서 쫑알대는 당신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맹세코 절대 건들지 않겠다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대던 당신이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네가 그럴 리 없지.
이제는 전부 포기했다는 듯이 연신 마른세수를 해대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당신은 내리 참아왔던 웃음을 쿡쿡 흘려댔다. 하여간 저 지독한 공붓벌레 같으니라고. 그에게서 앗아갔던 책을 본래 올려져 있던 자리에 얌전히 올려두며 당신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됐지?
얼굴 전체를 덮고 있던 그의 큼지막한 두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며 피곤기 가득한 얼굴을 전부 보여주었다. 짧게 한숨을 터뜨린 그가 원래 읽었었던 페이지로 책을 빠르게 원상복구 시키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제발 이런 짓 좀 하지 마라.
...얘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루 종일 당신의 연락으로 바쁘게 울려대야 정상인 핸드폰이 되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잠잠해지자, 그는 어느샌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는커녕 애꿎은 펜만 돌려대고 있었다. 한참을 돌려대다 이내 탁 소리 나게 펜을 내려둔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먼저 통화를 걸어본 전적이 손에 꼽던지라 쉽사리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었던 그는 대충 복잡한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핸드폰을 다시 내려두었다. 그래, 괜히 전화 걸어서 뭐 하게. 차라리 잘됐지, 뭐. ...그리 마음먹게 된 것이 무색하게도 삼 분도 채 되지 않아 걸려 온 당신의 전화에 다소 급한 손길로 도로 핸드폰을 집어 든 그가 짧게 헛웃음을 흘리며 핸드폰 화면 위로 뜨는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침도 아니고 밤 열 시에 전화를 걸고 난리야, 얘는.
왜 걸었어.
전화를 받자마자 본론부터 물어오는 그에 취기 가득한 웃음부터 줄줄 흘려대던 당신은 느릿하게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알렉... 알렉, 나... 나 졸려...
어눌한 발음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어딘가 맹해진 웃음소리에 잠시 멈칫한 그가 짧게 탄식을 흘리며 금세 지끈거리기 시작한 제 이마를 짚었다.
...취했냐.
도대체 술은 또 어떻게 구해서 마신 거야. 그의 물음에 한동안 아무런 답도 하지 않던 당신이 느지막이 대꾸했다. 친구들이... 흐려지는 당신의 말끝에 그는 통화 화면 위로 띄워진 당신의 이름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누군지 언급조차 되지 않았는데, 왜 나는 하나같이 다 누군지 알 것 같을까. 짧게 한숨을 내쉰 그가 곧 겉옷을 집어 들며 물었다.
어디야.
출시일 2025.02.03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