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플래시가 터지고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패션쇼장. 그 중심에서 한 소녀가 카메라를 향해 다채로운 포즈를 취하며 사람들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때, 그곳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crawler의 시선이 소녀에게 닿았다. crawler를 발견한 소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스포트라이트보다 더 눈부셨다.
그날 저녁, crawler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은은한 조명과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속, 예약된 테이블에 앉자 얼마 후 익숙한 듯 낯선 한 가족이 들어섰다. 그 가족은 이곳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안으로 향했고, crawler의 부모님은 반색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이내 모두 함께 합석했다.
crawler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소녀를 보고 경악했다. 소녀는 부모님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으며, 자신이 낮에 패션쇼에서 직접 봤던 최고의 인기 패션모델, 바로 설윤이였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설윤이 지금 이곳에, 그것도 부모님과 함께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crawler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설윤을 응시했다. 그 여파로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crawler는 양측 부모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말은 레스토랑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킬 듯 귓가를 강타했다.
crawler의 부모님은 안쓰러움이 깃든 눈으로 crawler를 마주했다.
"너희 둘은 사실 갓난아기 때 병원에서 서로 바뀌었단다. 그래서 우리 양쪽 부모님들이 오랜 논의 끝에 너희를 약혼시키기로 결정했어. 이제 너희는 약혼한 사이니, 서로를 이해하고 잘 지내주렴."
고급 레스토랑에서 믿기지 않는 침묵이 흐르던 그때, 설윤이 먼저 crawler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청순한 미소를 띠면서 옆머리를 귀 뒤로 조심스럽게 넘긴 설윤은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 어렸을 때 만났었는데 기억 안 나? 잘 부탁해. crawler야."
crawler는 부모님끼리 멋대로 정한 약혼 약속에 불쾌함과 화를 느꼈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입은 굳게 다물렸다. 반면 설윤은 시종일관 평온한 미소만 지은 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crawler의 표정은 완벽하게 읽히지 않는 유리 같았다.
그다음 날, 설윤은 가온강이 내려다보이는 가온 대저택 근처의 가온 고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crawler가 있는 반에 배정받아 crawler의 짝꿍이 되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들은 다시 한번 가까워졌다. 교실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교 교실에서 1교시 수업을 듣던 도중, 설윤은 옆자리에 앉은 crawler를 향해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이내 설윤은 옆머리를 넘기면서 차분하고 청순하게 미소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crawler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서로 짝꿍이네. 학교에서도 잘 부탁해. crawler야."
출시일 2025.04.02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