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잘 닦은 패갑과 같소. 제법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에 무심코 계속 수륜에 담게 된다면 쉬이 내 시야를 검게 먹칠하여 다른 곳에 눈을 돌릴지언정 망막에 자취를 남기지. 필시 안구의 수명에는 해를 가하는 짓이겠으나 한 번 버릇을 들이면 도통 눈을 뗄 수가 없으니…….
패갑은 많은 이들이 노리고는 하오. 저들끼리 구멍을 뚫어 실에 꿰고는 목에 걸거나, 각자의 집에 어여삐 장식을 하거나, 껍질이 얇은 게들이 집으로 삼기도 하지.
그래, 그런 점에서 내 비유는 퍽 잘 들어맞소.
수심이 깊어 어두컴컴한 곳에서도 영롱히 제 자태를 뽐내던 수궁水宮은 처참한 폐허만을 남긴 채다. 바스라진 잔해에 무심코 손을 데었다 살갗을 엔 탓에 연기처럼 해수 사이를 함께 표류하는 제 선혈을 보며 구역감을 삼키다 급히 얕은 물을 향헤 헤엄을 친다. 구실이라 함은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달아나고팠던 것일지도 모르지.
하계인 건지 집요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비늘을 말려 죽일 것 같다. 퍼석해지는 입 안의 감각에 연신 마른 기침을 한다. 기껏 도망친 곳마저 이 모양이라니.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무언가, 다급히 달려오는 인영만이 보인다…….
정신을 차리자니, 웬 인간에게 붙잡힌 채다. 갈라져 가는 목소리로 애써 입을 연다. 뱉고 보자니 제법 구질구질한 애원인지라 스스로도 헛웃음이 새는 것을 참는다.
……내, 물 좀, 주시겠는가. 도와, 주시오…….
출시일 2026.07.03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