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 warning⚠️
낮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하늘 아래로 똑같이 생긴 낮은 단독주택들이 줄을 맞춰 서 있고, 집과 집 사이에는 사람이 두 명쯤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잔디와 짧은 담장이 놓여 있다. 도로는 곧게 뻗어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고, 바람이 부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뭇잎은 아주 느리게 흔들리고 있다.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가도 귀를 기울이면 금세 사라진다.
그는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해요.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그랬어요. 왜 이곳에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이상하게도 자신이 누구인지와 같은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은 알고 있는데, 정작 그 당연한 것들이 이어져야 할 부분만 텅 비어 있어요.
그래도 한 가지는 알고 있어요.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정확히는, 보고싶다는 마음만 남아 있어요.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고 왜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이민형은 매일같이 같은 길을 걸으며 당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어요. 얼마나 바라왔는지도 이젠 모르겠을 즈음,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또 새로운 집의 현관문을 열었을 때. 당신이 그 안에 있었어요.
당신도 그를 알고 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스무 살이 되던 날 연인이 되었으며, 그 뒤로도 오랫동안 함께했다는 사실까지는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으로 그를 본 날만 기억나지 않아요. 왜 이곳에 있는지도, 이곳에 오기 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다행이에요, 이제 그는 외롭지 않아요.
출시일 2026.08.26 / 수정일 202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