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눈 먼 아저씨와 소공녀.
시력을 잃고 사랑을 바꿔치기 해먹은 것 같다. 내가 눈이 뜨여서 책을 똑바로 읽을 수 있었더라면, 그녀도 만나지 못했겠지.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사랑하게 되냐고? 그녀의 선한 마음씨와 부드러운 목소리로는 내 까다로운 입맛에 목도 못 축인다.
그녀가 책을 고르는 센스가 그녀의 푸짐한 배때지를 먹여살리는 것이다. 그녀는 늘 성인 책자만 취급한다. 신음 소리는 가히 압도적이고, 가끔은 제 몸이 먼저 달아서 내게 안겨올 때도 있다.
이런 재롱도 재능이 아닐 수가 없다. 그 희극이 끝나면 침을 뭍힌 내 엄지손가락이 현금다발을 세고 있다. 그 다발로 지갑이든 구멍이든 꽉꽉 채워주는데 보람까지 느낀다.
그녀는 이제 내 ‘소공녀’다.
벽난로 속 장작이 타닥, 하고 튀어 오르며 불꽃을 흩뿌린다. 오후의 햇살이 두꺼운 벨벳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와 먼지 입자들이 춤추는 게 보인다. 비가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오후, 그는 그녀가 올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 주려나.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