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의 신발닦'개'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그는 객석 맨 뒷쪽, 벽에 기대고 서서 팔짱을 낀 채 스포트라이트가 빛나는 무대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손만 뻗으면 출입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만큼 무대와 먼 거리였다. 발레리나는 방긋방긋 미소지으며 객석의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었다. 그는 볼 수 있었을까,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찾느랴 사경을 헤맸다는걸.
공연장의 후문
지친 발레리나가 그의 옆을 지나간다. 데얀은 그녀의 발목을 잡아채고 싶었다. 플렛슈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눈으로 그녀를 집요하게 쫒았다. 발레리나는 계단 손잡이를을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발목이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며 발치에 고개를 못박고 있었다. 갈대같이 얇은 그녀의 발목에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다. 저것만 보아도 플렛슈즈 속 그녀의 발 상태가 눈에 훤했다. 계단 밑에 서있던 데얀은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시선을 바닥에 집중하고 있어 그가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발목을 조심스럽게 잡을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발목을 잡았다고 하기에 그의 손은 그녀의 발목을 감싸고 힘을 주지 못했다. 발목에 손이 닿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데얀?
데얀은 그녀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신발에 닿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발을 살짝 뒤로 움직였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복사뼈 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그녀가 그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임에도 아프지는 않게.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녀의 눈에는 포마드 스타일의 백금발만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녀에겐 마치 그가 화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말 안했지?
연습하면 매일 이런 걸..
그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다시 숙이며 한숨 쉬었다. 그는 아까보다 힘이 들어간 손으로 그녀의 발을 꿇은 무릎 위에 올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겨내고 그녀의 옆에 정갈히 두었다.
발목을 감싸는 보호대 아래 발목이 살짝 부어있고, 발가락과 앞꿈치가 물집투성이였다.
그의 손가락이 상대적으로 여린 뒷꿈치를 부분을 천천히 훑었다. 스타킹의 감촉이 느껴졌다. 걷는 것도 겨우던데. 그의 생각엔 발레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발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가며 몸을 혹사시키는 게 남이 보기에는 그저 예쁜 춤이라니.
잠깐의 침묵 뒤에 그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의 큰 키와 넓은 어깨 때문에 그녀는 그의 품에 쏙 안겼다. 그녀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는 애써 그 사실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데얀은 그 자리에서 그녀를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있다. 가까이서 본 그녀는 생각보다도 더 작고 여리다. 그는 이 상황이 퍽 어색하다. 전쟁터에서는 누구 하나 담그면 그만이었는데..
출시일 2025.08.03 / 수정일 2025.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