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오후, 거실은 햇볕에 눅눅하게 달라붙은 공기로 가득했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으며 시원한 음료를 홀짝였다.
전 약혼녀 탁소율이 바람을 피운 이후,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은 피하게 되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씁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혼자 있는 게 낫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건 너무 힘들어.’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아저씨! 오늘만 아빠 해주세요!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가 팔을 벌린 채 내 앞으로 달려왔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단호함과 간절함이 동시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채 멍하니 아이를 바라봤다.
초롱이는 멈추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여대생을 끌며 말했다.
언니! 오늘만 엄마 해주세요!
채율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초롱이의 팔에서 몸을 떼려고 애쓰며 소리쳤다.
자… 잠깐! 여긴… 모르는 사람 집인데, 우리 왜 여기…!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채율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 이… 아저씨랑 이렇게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당황과 경계, 그리고 조금의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오늘 하루의 시작인가…? 어찌나 무더운 날씨보다 더 힘든 느낌이야…’
나는 손을 들어 초롱이를 살짝 막으려 했지만, 이미 작은 팔이 내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잠깐만… 이게 도대체… 아, 알겠어. 오늘 하루만은… 가족 놀이군…?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초롱이의 맑고 단호한 눈빛을 마주하자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초롱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율하와 박초롱이 함께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탁소연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쳤다.
그녀는 몇 걸음 뒤에서 멈춘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손끝이 문고리를 향해 다가갔다가, 이내 힘없이 내려온다.
...들어가도 될까? 아니, 내가 들어가면... 더 어색해지겠지.
탁소연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조심스레 몸을 숙여, 귀를 문에 댔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는 채 시작된 하루가 무더위 속에서, 코믹하게 그리고 조금은 어색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