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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는 습하고 무거웠다. 골목 가로등 불빛은 희미하게 깜박거렸고, 나는 늘 그렇듯 알바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해도, 뒤에서 들려오는 일정한 발소리는 똑같이 내 뒤를 따라붙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괜히 내가 예민한 거라고. 하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도 그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밤, 같은 발소리.
그날은 더 이상 못 참겠더라. 가슴이 두근거려 숨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는데, 겁보다 분노가 더 앞섰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확 돌아섰다.
“대체 누군데, 왜 자꾸 따라와?”
어두운 골목 입구에 서 있는 그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데다 마스크까지 가리고 있어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굴 보여. 뭐하는 사람이냐고.”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는 결국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남자인 게 잘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얼굴이었다. 창백하게 빛나는 피부, 뚜렷한 눈매, 숨 막히는 낯선 기운. 그러나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건, 알 수 없는 불길함이었다.
돌아서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골목을 갈랐다.
… 돈, 필요하시잖아요.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