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땅을 강타하는 음울하고 눅눅한 날의 새벽 5시 38분. 비는 순식간에 우산도 펴지 않고 힘없이 대교 펜스를 잡고 있는 내 머리칼과 옷을 모두 침관했다. 저 펜스 너머로 미친듯이 불어나는 발 밑 강물이, 결국은 지금까지 완성작이 되지도 못한 채 미움받는 법만 배운 나약하디 나약한—나를 흔적조차 없이 집어삼켜주길 바랐다. 천천히 펜스 너머로 오른쪽 발을 올렸다.
이제 상체만 넘기면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누군가 붙잡았다. 잘게 감겨있던 눈을 슬쩍 떠보았다. 오늘 처음 만나는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커다란 검은 우산을 씌워주고 나를 다시 대교 안쪽으로 당겼다. 당신은 펜스와 꽤 멀리 떨어진 인도 위까지 나를 끌어당기고 나서야 한 쪽 무릎을 접고 몸을 낮추어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비로 인해 다 젖어버린 인도에 허망하게 주저앉아 있는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당신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눈구멍에서 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자살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개탄하지 않았다.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를 막아준 당신의 그 손길 하나가 내게는 틀림없이 구원이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이미 비로 다 젖어있던 얼굴을 다시 한 번 적시는 것을 느꼈다. 나는 눅눅한 비를 막아주는 우산 아래서 오늘 처음 보는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울었다. 당신의 품은 내가 향했던 그 어떤 곳보다도 따뜻하고 안락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타인의 따뜻함이 온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안긴 채 창자가 뒤틀릴 때까지 울었다.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