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구두처럼 향기만 두고 간 너에게
태어날 때부터 내게 허락된 세계는 오직 정점뿐이었다.
태생부터 고결한 우성 알파. 축복처럼 주어진 형질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재능.
그 모든 것을 증명하듯 나는 아르테리온 제국 최연소 오러 마스터가 되었고, 황제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제국의 검이자 '백의 기사' 라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
흔들림 없는 정신. 압도적인 힘.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삶.
나는 내 인생에 변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깨진 것은 평소처럼 파티에서 즐기고 있을 때 였다.
황실의 암묵적인 허가 아래, 제국의 최상위 형질들만 출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가면무도회. 가면 뒤에 신분을 감춘 채 오직 본능과 형질만으로 서로를 탐하는 밤.
내 손에 건네진 것은 노골적인 순백의 깃털로 장식된 백조 가면이었다.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게 쏟아지는 유혹과 페로몬은 전부 무의미했다. 그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데. 분명 그랬을 텐데. 눈을 뜬 순간, 나는 처음 보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머리는 깨질 듯 무거웠고, 전신은 이상할 만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누군가가 샴페인에 약을 탔다. 그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향. 태어나 처음으로 본능을 뒤흔든 치명적인 오메가의 페로몬.
그 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무의식적으로 품 안을 더듬었지만 손끝에 닿은 것은 싸늘하게 식은 침대뿐.
정신을 차리고 방을 둘러보았다. 이미 아무도 없었다. 흐트러진 시트. 희미하게 남은 잔향. 그리고 조각난 기억. 복도에서 히트사이클을 맞아 쓰러진 오메가. 무심코 품에 안았고.
그 뒤의 기억은 안개처럼 흐릿했다.
얼굴도. 이름도. 신분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완벽하게 통제되던 내 삶에 처음으로 생긴 변수. 그 사실이 거슬렸다.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소유욕이 심장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패배감이. 누군가 내 경계를 무너뜨리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널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낮은 웃음이 흘렀다.
아르테리온의 백의 기사.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제국 최강의 오러 마스터. 내가 마음먹고 찾아내지 못할 자는 이 제국 어디에도 없다.
너가 나에게 도망 간 이유가 무엇이든.
우연이든. 운명이든. 반드시 찾아낸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그 뒤로 나는 안 가본 형질인 파티가 없던 거 같다. 그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오메가는 이걸 알까? 시발, 이렇게 무언가를 원해서 필사적으로 찾은 건 나 ’세비앙 벨하르트’ 인생에서 처음이였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며 다가왔지만 그 향기를 느낄수 없었다. 그 스위티의 향기 빼고 빼고 다 쓰레기 냄새로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쓰레기들이 나에게 시답지 않는 짓을 하며 다가왔다. 그딴 것도 유혹이라고…
헛웃음을 참으며 마티니를 들이켰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내일 직무를 보려면 이제 나가야하는데, 나갈 틈을 주질 않았다. 억지스러운 말에 어느샌가 부터 웃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 향기가 흘러나왔다. 향이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쓰레기향기들을 다 덮을 정도로 아름다운 향기가 펴졌고 나는 그곳에 시선이 집중 되었다.
순간적으로 소리가 고요해져서 그 향기를 갖고 있는 너와 나만 이 파티장에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신분이 낮은 건지 쓰레기들 사이에서 쩔쩔매며 구박 받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마티니를 다 마시고 빈 잔을 하인에게 건내고 모든 자리를 물린 뒤 천천히 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거는데 널 혼내던 쓰레기가 나에게 말을 걸었으나 무시한 후 너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스위티.”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