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서늘하다 못해 손가락이 얼어붙는 것 같은 도축장. 철제 사슬에 묶인 어린 수인. 턱은 떨리고 눈은 공포에 초점이 흐려져 있다. 릴리스는 낡은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손으로 사슬을 잡아당기며, 가만히 노래를 흥얼거린다.
... 당신을 흘끗 쳐다보고는, 싱긋 웃는다. 숨 크게 쉬어.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럼 좀 편해질 거야.
눈물이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왜, 왜 그렇게 웃는 거야...
으음. 그렇다고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건 그것대로 무섭지 않을까? 다시 당신에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난 이게 좋아.
미친건가, 이 여자는. 아니, 이 세상이 미쳐버린 건가? 이 사람도, 그저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일 뿐인가? 젠장, 머릿속이 어지러워. 구토가 나올 것 같아. 속이 메스껍다... ... 눈에서는 쉬지 않고 의미도 없는 눈물이 흐른다.
... 당신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다, 당신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눈물에 젖은 당신의 눈을. 마치 애처롭다는 듯이. ... 그녀가 손을 뻗어, 당신의 눈가를 어루만져 준다. 그녀의 마음 속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처음으로, 눈앞의 이 수인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살려주고 싶었다.
...미안. 너무 울지 마. 잠깐이면 돼. 아프지도 않을 거야. 어째서일까.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당신을 따스하게 껴안고서 천천히 토닥인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던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침내 그 감정이 그녀의 마음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
저녁. 정육점의 불빛은 기름 냄새와 먼지를 품은 채 깜빡였다. 당신은 릴리스가 건네준 묘하게 차가운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 안에는… 물일까? 아니면? 마셔. 이거, 몸에 좋은 거야. 릴리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이 너무 환해서, 순간 본능적으로 공포가 당신을 옥죄어 왔다.
이게…뭔데요...?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되물었다.
그거? 음…릴리스는 눈을 치켜뜨고 허공을 가리키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덜 무섭고, 조금 더 재밌는 거.
그녀는 자리에 앉지 않고, 당신의 의자 뒤를 빙글빙글, 정신 사납게 돌았다. 손끝이 의자 등받이를 스치며 미묘하게 불쾌한 소리를 냈다. 넌 좋은 냄새가 나. 수인들 중에선 꽤 드문 편이지. 난 마음에 들어.
...당신은 그저 침묵하며, 떨리는 손으로 머그컵을 입가에 가져갔다.
...포도 맛이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 뒤로 직접 만든 포도주스라느니, 그런 소릴 종알거렸던 것 같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은 손목에 남은 끈 자국을 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어제 밤, 릴리스가 잠시 장난삼아—아니, 그녀는 장난이라 불렀지만—그의 손목을 묶어두었을 때 남은 흔적이었다.
릴리스가 소리도 없이 당신의 등 뒤로 다가와 물었다. ...아파? 왠지 목소리에는 죄책감이 서려있었다.
...! 읏... 순간 당신은 의자 너머로 거의 넘어갈 뻔 했지만, 릴리스가 당신을 번쩍 들어 등받이가 있는 의자로 옮겨주었다.
그녀는 어제 당신의 손목을 묶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은 미안한 듯 말했다. 미안, 그...어제는 나도 좀 흥분했달까, 힘 조절을 잘못했나 봐... 그녀는 곧이어 양손을 맞대고 당신에게 사과했다. 미안...! 역시 술을 마시면 안되나 봐 나는...
...이상야릇한 기분. 당장 지난주만 해도, 당신을 죽이려 한 여자였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런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에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그런 한심한 사람이었다. ...아니요. 딱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지었다. 그래도... 미안. 그녀가 따뜻한 미소를 띄고 당신의 손목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 그녀는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무언가, 그녀의 마음을 간질였다. 불쾌함? 아니면 다른 감정인가? 하여튼 그녀는 이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 그녀는 칼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흐으음. 오늘따라 왜 이런담. 그녀는 당신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지금 보니까 꽤 귀엽기도 하고... 한번쯤은, 괜찮지 않으려나.
릴리스는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뒤. 철컹.
...당신을 옥죄던 사슬이 풀렸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 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
...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꽤나 '기발한' 생각이 스쳤다. ...너. 나랑 같이 갈래?
이건, 일종의 변덕이었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호기심. 그리고... 아주 조금의, 동정심.
...원래 이야기는 이런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