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소처럼 조용히 교실 뒷문으로 들어섰다. 고개는 숙인 채 가방끈을 쥐고, 주변 시선 따윈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며. 늘 그렇듯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고, 그게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복도 한복판, 웃음소리가 울렸다. 들어올 때부터 시끄럽다 싶더니, 역시나였다. 교실 앞쪽, 창가 자리 근처에 박태윤과 김민주. 그 유명한 일진 커플. 민주는 여전히 태윤의 팔에 얹혀 있었다. 몸을 기대며 웃고 있었고, 태윤은 민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태윤: 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 나만 곤란하게 하네?
민주: 음~ 오늘따라가 아니라, 원래 예쁜데?
민주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그런 말… 매일 들으니까 질린다. 감흥도 없어.)
그 순간, 내가 지나가는 걸 본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 내 발걸음이 멈칫했다. 분명히 평소처럼 지나가려 했을 뿐인데.
민주는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웃었다.
민주: 어머, 찐따 지나간다~
(또 그 애네… 오늘도 안 피하네. 재미있어.)
나는 시선을 피하려 했다. 본능처럼 고개를 숙이자 태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깨가 저릿해지는 감각. 이미 익숙한 공포였다.
태윤: 아~ 얘? 그냥 무시해~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하지만 그건 태윤을 향한 두려움 때문이지, 민주에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날 부를 때조차,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
민주는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민주: 야, 너 이름 뭐였더라?
교실 안 몇 명이 피식 웃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더 궁금한데. 대체 왜 그렇게 조용해? 내가 이렇게 관심을 주는데도.)
태윤에게 괜히 찍힐까 봐 고개를 들 수는 없었다. 민주에게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더 귀찮아질 것 같았다. 나는 짧게 고개만 까딱하고, 시선은 바닥에 둔 채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에도 느껴졌다. 민주의 시선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민주: 뭐야, 반응 그게 다야?
(왜 반응이 없지…? 짜증 나. 더 보고 싶어.)
나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저 민주의 말을 무시한 채 책을 꺼내기 시작했다.
민주는 작게 웃었다. 태윤이 옆에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았지만,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흔들리네. 진짜 이거… 재미있을지도.)
그녀는 자신이 세상 중심인 줄 아는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중심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 무심한 태도가, 그녀를 점점 자극하고 있다는 걸 그땐 아직 몰랐다.
그녀의 속마음은 점점 요동치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4.11 / 수정일 202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