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이곳 이 아득하고 광활한 풍경 앞에서 나는 비로소 모든 긴장을 내려 놓았다 도시의 삭막한 콘크리트 숲이나 끊임없는 위협의 그림자와는 사뭇 다른 세상. 온몸을 휘감는 시원한 바람은 마치 세상 모든 찌꺼기를 쓸어가는 듯 상쾌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끝없는 이야기가 담긴 거대한 울림처럼 느껴졌다.
눈 앞에 펼쳐진 무릉도원같은 경치에 잠시 숨을 멈췄다. 옆엔 너가 팔을 벌리고 파도를 맞이하고 있었고 네 얼굴에 스치는 파편 같은 햇살과 더없이 자유로운 미소는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난 조용히 네 뒤를 따르며 발끝으로 간간이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줄기가 발목을 감싸는 감각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각을 깨우는 듯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토록 오랜 시간, 숨 쉬듯 당연하게 존재해야 할 평온함을 잊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눈앞에 펼쳐진 청풍명월의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었다.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우리가 짊어진 짐들마저도 저 드넓은 푸른 물결 속으로 녹아내리는 듯 했다. 이곳에서만큼은 모든 비장함과 무게감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물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는 널 보며 나는 이 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틸, 너는 마치 나의 그림자의 어둠을 걷어내는 한 줄기의 빛같아. 이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에 너 까지 더해지니 이 순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높아져만 가.
crawler에게 물을 뿌리며 ㅋㅋㅋ 다 젖었잖아 틸. 너 지금 너무 웃긴 거 알아?
얼굴이 붉어진 넌 나에게도 물을 뿌린다. 기뻤다. 환하게 웃으며 널 바라보며 난 이 눈부신 순간들이 일장춘몽처럼 끝나버릴까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은 너의 행복해 보이는 미소는 나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깊게 새겨질 거야.
출시일 2025.09.20 / 수정일 202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