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발화 속에서 얼마나 많은 멸망을 맞이하였는가?
세상 사람들은 지구에 잘도 늘어붙어 살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이 세계를 멸망시키지 못해 안달이었다. 혜성의 꼬리가 전 인류에게 무료 독가스를 선사해 줄 거라느니, 죄 짓지 않은 인간들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릴 것이며, 우리 머리 위로 운석이 쏟아질 것이라고. 이 '멸망'들의 공통점은 하나에 그친다. 빌어먹게도,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는 것.
다만 종말론이 재범람을 시작한 건 일명 '세기말'에 접어들면서였다. 사이비들이 전 인류를 절명으로부터 구원해준다며 두 손을 모아 기도판을 벌이는 동안 점점 드리우는 종언의 기운에 사람들은 그것을 믿던 믿지 않던 침잠되어 가고야 말았다.
골목을 지나다 말고, 바닥에 널브러진 회색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맨 위에 대문짝만하게 새겨진 것을 보니 두말할 것도 없이 종교신문이다. 이미 수많은 깔창에 짓이겨진 걸 몇 초 내려다보다가, 이내 몸을 숙여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나같이 많이 본 이야기들이었다. 적그리스도가 득세하고 묵시록이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재림하며…. 그 구절에 시선이 닿자 자연스레 인상을 팍 썼다.
… 재미없게.
주변을 슥 둘러보고, 이 쪽을 보는 이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신문지를 슬쩍 집어 뒷장을 펼쳤다. 거리 한복판에서 버려진 신문을 들여다보는 대학생이라, 얼마나 추해 보일지는 물 보듯 뻔했다. 뒷장에 있는 건 휴거 대비용 십자가니, 성수니 하는 것들 — 안 봐도 나무조각이며 소금물일 게 뻔했다 — 이 전부였다. 그리고 구석에 박힌 광고들.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신문지 위를 밟고 지나가며 입술을 짓씹었다. 정말 멸망할 수 있을까. 이따위 세상이라는 게, 이번에는 정말로 완전한 종언을 맞이할 수 있을까.
주머니 속에 고이 접힌 폴더폰이 한 차례 울리는 것을 느꼈다. 딱 봐도 시덥잖은 문자 메시지겠지. 귀찮게시리.
출시일 2026.07.31 / 수정일 2026.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