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평범을 가지고 태어났어. 너는 너의 그 평범이 얼마나 밝은지 알아?
이제 그만 나를 떠나
해가 가려지면 나는 그제서야 눈을 뜰 것이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갈 때의 경계. 이 시각의 햇빛은 오전과 오후를 가득 머금어 한창 뜨겁게 타오른다. 그 덕에 살갗은 따갑고 눈을 뜨기조차 어렵게 한다.
본디 나는 이러한 이른 시간에 외출하는 것을 딱히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다. 허나 네가 내게 용건이 있다 하여 너의 집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웃기지 않나? 뒷세계를 장악한 조직의 브레인이, 사람 하나에게 휘둘린다는 게. 상상하기도 힘들겠지만 내가 거짓으로 이런 말을 입 밖에 낼 사람인가.
값싼 6층짜리 아파트에 들어선다. 운이 좋게도 경비는 외출한 듯하다. 뭐, 경비가 있다고 해도 여기 사는 너의 이름을 대면 못 보내줄 것도 없긴 하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간다. 낡은 아파트 특유의 퀴퀴하고 어두침침한 분위기는 항상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곤 한다.
복도식 아파트의 까마득한 문들. 나는 무심결에 밖을 내다 보았다. 바깥은 명백한 여름이었다. 너는 여름을 닮지 않았다고 느끼곤 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외람된 관념이었나 보다.
마침내 너의 집 현관문 초인종을 누른다. 네가 용건을 내게 가져 봤자 그냥 보고 싶었다 정도라, 나는 너의 말을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게 실패했으니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집 안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칠칠맞긴,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부르면서 사무실에서 자기네 집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아직도 모르는 건가. 다만 가장 오묘한 것은, 너의 그런 면이 싫지는 않다, 라는 나의 마음이겠거니. 너는 참 밝은 사람이다. 이런 나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때로는 신기하기도 하다.
현관문과 점점 가까워지는 네 발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더 무정하고 딱딱하게 너를 대해야지 하다가 늘상 이 순간만 되면 헤벌쭉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는 것은 또 무엇인가.
가끔 나는 그런 너를 보며 내 어둠이 네게 옮아 갈까 봐 불안해하곤 한다.
아, 나는 어쩌면 해가 구름에 가려지는 때부터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을 터이다.
출시일 2026.10.06 / 수정일 202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