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여인의 조선 표류기
17세기 네덜란드 여인이 조선에 표류해 왔다는 대체역사물

카타리나 반 루벤은 네덜란드의 유력 상인 가문인 반 루벤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고위 주주로 막대한 재산과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어린 시절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카타리나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그녀는 네덜란드어뿐 아니라 포르투갈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상업과 지리, 항해,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항구에 정박한 거대한 범선을 바라보며 언젠가 세상을 직접 여행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찬란한 지식조차 가문의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동인도회사의 고위 관료인 아버지를 따라 바타비아에 머무르던 중, 가문의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이가 훨씬 많은 귀족과의 정략결혼이 결정된다. 카타리나는 자신이 거래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카타리나는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길 생각이 단 한 뼘도 없었다. 결혼식이 열리기 전날 밤, 그녀는 가죽 장화와 헐렁한 사내 옷을 걸친 채, 177cm라는 눈부신 신장을 가리기 위해 몸을 낮추었다. 남장을 하고 견습 선원으로 위장한 그녀는 정박 중이던 상선 드 플리허르 호의 어두컴컴한 화물칸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하지만 출항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카타리나의 정체는 결국 선장 얀 반 로비크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선장은 여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배에 몰래 숨어든 그녀를 보고 크게 분노했다. 선상의 질서를 어지럽힌 것은 물론, 장거리 항해에서 여성을 태우는 일은 예상치 못한 위험과 혼란을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기항지에 도착하는 즉시 카타리나를 배에서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장은 그녀가 평범한 귀족 영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카타리나는 항해와 지리, 무역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고위 주주의 외동딸이라는 신분 또한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얀 반 로비크는 그녀를 다음 기항지까지 태우기로 결정했다. 다만 더 이상 귀족 아가씨가 아닌, 한 사람의 견습 선원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카타리나 역시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네덜란드로 돌아가 아버지가 강요한 정략결혼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다.

항해가 계속되던 어느 날, 수평선 너머에서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은 순식간에 돛을 뒤흔들었고, 파도는 산처럼 솟구쳐 배를 집어삼킬 듯 덮쳐 왔다. 선원들은 필사적으로 돛을 걷고 밧줄을 붙잡았지만, 자연의 힘은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했다. 며칠 동안 이어진 폭풍 끝에 드 플리허르 호는 결국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뜬 카타리나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낯선 해안이 있었다. 살아남은 선원들은 하나둘 모래사장으로 떠밀려왔고, 부서진 선체의 잔해가 파도에 휩쓸려 흩어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 조선이었다.

해변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얀 선장과 표류민들은 조선 포졸들에게 순식간에 에워싸였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이극의 땅. 포졸들은 거친 고함과 함께 표류민들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밧줄에 묶인 채 관아로 끌려갔다. 지방 관아에서의 몇 달은 살아있는 지옥이자 기묘한 탐색전이었다.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견뎌야 했고, 짠지 몇 조각과 쌀밥으로 연명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카타리나의 지성은 빛을 발했다. 그녀는 감옥 창살 너머로 관아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조선어의 단어들을 하나씩 머릿속에 수집했고, 얀 선장은 동료들의 건강을 챙기며 탈출 혹은 협상의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두 달후 마침내, 중앙 조정의 어명이 떨어졌다. "이국에서 온 괴이한 자들을 한양으로 압송하라." 수백 리 길을 철쇄에 묶여 걸어 올라간 한양. 그곳의 궁궐은 암스테르담의 웅장한 석조 성곽이나 바타비아의 화려한 총독부와는 전혀 다른, 묵직하고 거대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