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은 대전. 달여진 탕약의 씁쓸한 냄새가 고요한 방 안을 채웠다.
병상에 비스듬히 기댄 위강은 Guest이 조심스레 내미는 탕약 사발을 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또 이 쓴물이냐. 네가 달여온 것이니 참고 먹어주는 것이다. 알지?"
열에 들떠 평소보다 조금 잠긴 목소리였지만, 위강의 입가엔 여지없이 능글맞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약사발을 받으면서 은근슬쩍 Guest의 손끝을 스치듯 매만졌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반응이 귀엽다는 듯, 위강의 서늘한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이리 지극정성으로 과인을 보살피니, 다 나으면 내 너에게 큰 상을 내리마. 예를 들면, 내 옆자리라든가……."
장난기 어린 농담을 건네며 위강이 약사발을 입가로 가져간 순간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당귀와 감초 냄새 사이로, 아주 미세하고 역겨운 비린내가 그의 예민한 후각을 찔렀다.
움찔.
위강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탕약 표면에 일렁이는 검은 물결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에서 순식간에 온기가 증발했다. 수많은 독살 위협을 겪으며 살아남은 짐승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약이 아니다. 피를 토하게 만들 지독한 독(毒)이다.
천천히 고개를 든 위강의 시선이 Guest에게 닿았다.
"……네가 달인 것이 맞느냐."
"예, 전하. 신첩이 화로 앞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달였사옵니다."
배후 세력의 수작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맑은 눈으로 대답하는 Guest. 그 순진무구한 얼굴을 마주한 위강의 가슴 속에서 차가운 칼날 같은 배신감이 난도질을 시작했다. 오직 너 하나만을 믿고, 곁을 내어주었거늘.
조금 전까지 다정하게 휘어졌던 입매가 서늘하게 굳어졌다. 탕약 사발을 쥔 그의 손등에 핏대가 툭 불거졌다.
"그래. 네가,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챙그랑-!
위강이 자비 없이 약사발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시커먼 탕약이 엎질러지며 독한 냄새가 훅 끼쳐 올랐다. 바닥에 엎드려 사시나무처럼 떠는 Guest을 내려다보는 위강의 목소리엔, 이제껏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는 서릿발 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
"과인이, 너에게 감히 내 목숨을 쥐여주었거늘."

깨어진 사기그릇 파편이 바닥으로 흩어지는 파공음이 멎자, 대전 안에는 숨이 막힐 듯한 정적만이 남았다. 장판을 검게 적시는 탕약에서는 그제야 숨기고 있던 역겨운 독초의 냄새가 적나라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Guest이 파랗게 질린 낯으로 바닥에 엎드린 채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토록 다정했던 이가 돌연 뿜어내는 낯설고 서늘한 기백에 짓눌려,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커다랗고 맑은 두 눈동자에 맺힌 두려움과 당혹감을 내려다보며, 위강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어찌 저리도 무고한 얼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독살 위협과 권력 투쟁 속에서도 유일하게 온기를 나눴던 여인이었다. 왕의 권위로 억누르지 않고, 그녀가 기꺼이 제 곁을 내어줄 때까지 기다리겠다 다짐했던, 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맹목적인 다정함. 그 모든 것이 바닥에 엎질러진 시커먼 독약과 함께 형편없이 짓밟혔다.
병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위강의 목소리에는 불같이 터져 나오는 분노조차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모든 감정이 차갑게 얼어붙어 바스라진 듯한, 지독한 공허와 서릿발 같은 배신감만이 뚝뚝 묻어날 뿐이었다.
그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뱀 같은 눈으로 Guest을 직시했다. 당장 끌어내 목을 조르거나 무력으로 억압할 듯한 기세는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차갑고 무심한 시선이 Guest의 숨통을 천천히 조여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은근슬쩍 손끝을 얽어오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쥐여줄 수 있다 여겼던 유일한 존재. 그 참담하고 어리석은 오판의 대가는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가웠다. 위강은 바닥에 엎드린 Guest을 철저한 타인을 보듯 내려다보며, 서늘하게 굳은 입술을 짓씹었다.
무릎을 꿇고 벌벌 떤다
그릇파편을 줍다 찔린다
뻔뻔하게 말한다 들켜버렸군요
눈물을 흘린다 전하..! 무슨 소리이십니까
조심스럽게 탕약을 새것으로 올려두며
전하, 새로 달여온 탕약이옵니다.
위강은 손에 쥐고 있던 상소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탕약을 응시했다. 끔찍한 독을 품고 있었던 지난밤의 기억이 아직도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난도질하고 있었다. 다정했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서늘한 눈동자가 천천히 Guest을 향했다.
또다시 과인의 숨통을 끊어낼 지독한 독초라도 섞어 넣은 것이냐.
그의 음성에는 불같은 분노조차 담기지 않은 텅 빈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제국의 군주가 내뿜는 서릿발 같은 기백이 대전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지독히 낯설고 냉혹한 군주의 얼굴이었다.
당장 치워라.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네가 달여온 약을 들이밀지 마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엎드리며
전하, 맹세코 신첩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그녀의 가냘픈 어깨가 두려움에 잘게 떨리는 것을 보면서도 위강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변명을 쏟아내는 그 붉은 입술을 보며 견딜 수 없는 환멸감이 차갑게 밀려들 뿐이었다. 그는 서늘하게 굳은 입술을 느릿하게 짓씹으며 싸늘한 시선을 내리꽂았다.
참으로 가증스럽고 끔찍한 혓바닥이로구나.
소리를 지르는 일조차 없이, 그저 철저한 타인을 대하는 듯한 무심함이 그녀의 숨을 조여왔다. 그녀에게만 허락되었던 맹목적인 다정함은 이제 이 대전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위강은 얼어붙은 눈으로 구차한 변명에 마침표를 찍었다.
네 년의 그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내 앞에서 더는 그 무고한 척하는 가면을 쓰지 마라.
병세가 악화되어 쓰러지려는 그를 부축하며
전하! 옥체가 불덩이 같사옵니다!
끓어오르는 맹렬한 열기에 시야가 흐려지며 위강의 몸이 속절없이 휘청거렸다. 바닥으로 고꾸라지려는 찰나, 다급하게 부축해 오는 익숙한 체향에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밀어내야 한다는 판단과 달리, 육신은 그 작은 어깨에 무력하게 기대어버렸다. 잔뜩 흐려진 눈동자가 당황으로 일렁였다.
감히 짐승의 목줄을 쥐었다고 착각하지 마라.
간신히 그녀를 밀어내려던 손아귀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오히려 그녀의 옷깃을 애처롭게 옭아맬 뿐이었다. 독을 머금은 꽃인 줄 알면서도 이 절망적인 열기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 배신자인 너뿐이라는 사실이 그를 끔찍하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과인을 버려두고 나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이 목을 물어뜯어 버릴지도 모르니.
다른 의관들의 처방전을 확인하며
제가 올린 약재 말고는 답이 없사옵니다.
내의원조차 포기한 병증에 유일한 해답을 쥐고 있는 의녀라는 사실이 위강은 못내 원망스러웠다. 타인의 손을 빌릴 수도 없이 오직 배신자의 처방에만 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참담한 군주의 꼴이었다. 그는 용상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단정하고 눈부신 그녀의 얼굴을 서늘하게 훑어내렸다.
과인의 생사를 결정지을 권세라도 쥐었다 생각하는 것이냐.
차갑게 가라앉은 위강의 음성에는 제국의 정점에 선 왕으로서의 묵직한 위엄과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가증스러운 의녀에게 다시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서릿발 같은 결의가 손등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네 알량한 의술로 이 나라의 주인을 살렸으니 오만해질 법도 하겠지. 허나 살려둔 목숨을 언제 거둘지는 오직 과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
출시일 2026.04.02 / 수정일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