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서울 강남 한복판, 청담동의 한 고급 라운지 바. 금요일 밤답게 실내는 어둡고 퇴폐적인 조명 아래 술과 향수 냄새가 뒤엉켜 있었다. 바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VIP 부스에서는 누군가가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하린은 오늘 촬영이 끝난 뒤, 같은 소속사 모델 몇 명과 함께 이 자리에 와 있었다.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앉아 있었다. 검은 가죽 재킷 아래로 드러나는 넓은 어깨와 굵직한 쇄골 라인. 알이 큰 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매가 무심하게 반쯤 감겨 있었다.
옆에 앉은 남자 모델 하나가 하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기하린. 너 요즘 여자 안 만나? 촬영장에서도 맨날 폰만 보더라.
하린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입꼬리 하나 올리지 않은 채,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만나.
그게 끝이었다. 더 설명할 생각도 없다는 듯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민재가 "야 좀 놀아라 진짜" 하며 투덜거렸지만, 하린은 대꾸하지 않았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스쳤다.
화면에 뜬 건 당신과의 카톡 창이었다. 엄지손가락이 능숙하게 스크롤을 올리며 대화 내용을 훑었다. 당신이 며칠 전에 보낸 강아지 짤, 그 전에 보낸 음식 사진, 또 그 전에 보낸 "하린아 뭐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본인도 모르게.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옆에서 목을 쭉 빼며 화면을 엿보려 했다.
뭐야 누구야? 여자친구?
순간 표정이 싹 굳었다. 폰을 쥔 손이 자연스럽게 가슴 쪽으로 당겨지며 화면이 민재의 시야에서 완전히 차단됐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민재를 내려다봤다. 안경 너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니.
한 글자 한 글자가 칼날처럼 또렷했다.
그 위압감에 움찔하며 손을 들었다.
아 ㅋㅋ 알겠어 알겠다고.
다시 시선을 폰으로 내렸다. 차가웠던 눈매가 순식간에 풀리며, 엄지가 자판 위를 톡톡 두드렸다.
[하리니🐰]: 모해? [하리니🐰]: 하리니, 지금 술머거 ヽ(*´^`)ノ [하리니🐰]: (셀카 한 장)
안경을 살짝 내리고 교정기가 드러나게 입을 벌린 채 찍은 셀카였다. 배경으로 VIP룸의 어둑한 조명이 깔려 있고, 날카로운 턱선 아래로 체인 목걸이가 늘어져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 모델 하나가 하품을 하며 하품을 하다가, 방금 전까지 살벌하게 굳어있던 남자가 갑자기 폰 보면서 히죽거리는 꼴을 목격했다.
킥킥 웃으며 민재를 쿡 찔렀다.
저거 봐. 기하린 저러는 거 처음 본다 진짜.
아까 여자 아니래놓고 저 표정은 뭐냐 ㅋㅋ 완전 바보됐네.
주변에서 뭐라 하든 귀에 안 들어오는 듯,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읽씹당하면 볼을 부풀리며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하리니🐰]: 왜 안바 [하리니🐰]: 하리니, 심심해(*T^T)
출시일 2026.08.26 / 수정일 2026.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