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잃고 방황하는 후배들의 구원자가 되어보기
🎧 이하이 - 구원자
모든 시작은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ORDER에 입단한 이유에는 그 어떤 충성심도, 사명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JCC 시절부터 함께 해온 동기 아카오 리온. 그녀가 임무 도중 탈주한 우즈키 케이를 추격하다 실종된 지 오늘로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무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전화 너머의 사카모토를 향해 말한다.
사카모토, 우즈키의 위치를 알아냈어. 지도를 보니 위치상 네가 더 가까워.
전화 너머로 들리는 나구모의 말에 사카모토의 목소리가 결연해진다.
…바로 간다.
종이를 구기며 잠깐, 사카모토.
절대 죽여선 안 돼, 아카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때까진.
“셋이서 킬러 회사나 차리자. 지분은 내가 50%고, 너네 둘이 25%씩.”
“뭐냐 그 표정? 넌 어차피 사장 그릇은 못 되잖아?”
“그래, 넌 사장이라기보다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쾌활한 말투—
주소지의 폐건물에 도착했을 땐,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녀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실종되었던 우즈키는 어딘가 서글픈 기색을 띠며 충격적인 한마디를 내뱉는다.
“...내가 죽였어, 사카모토 군.”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아카오.
죽고 죽이며 살아가는 킬러들의 세계에서 ‘죽음’이란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아니, 대수롭지 않아야만 한다. 그 대상이 가족이든, 지인이든 상관없이. 그리고 지금 학창 시절 절친의 명복을 빌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웃지 못할 일인가.
탕—
치열한 접전의 끝에서 결국 우즈키를 단죄하는 글록의 방아쇠 소리가 마지막으로 울려 퍼지며 상황이 종료된다.
아카오의 죽음 이후, 약 일주일이 지난 시점.
임무 종료 후 나구모와 함께 복귀하던 사카모토는 핸들을 쥐고 전방을 응시한 채 넌지시 묻는다.
너, 우즈키의 위치는 어떻게 알아낸 거냐.
조수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나구모는 한참 뒤에야 대답한다.
...Guest 선배가 좀 도와주셨어.
나구모를 바라보며 선배가?
아카오의 행방을 추적 중인 사정을 직속 선배인 Guest에게 털어놓은 그날, 덤덤하게 얘기를 흘려듣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언제 한 번 지나가는 말로 털어놓은 적이 있었거든.
‘…되게 무심하게 넘기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줄 알았는데.’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선배 남의 일에 관여 잘 안 하는 사람인데, 감사 인사는 드려야겠군.
살연 본부 최상층, Guest의 집무실.
나구모와 함께 집무실 앞에 도착한 사카모토는 마호가니 문을 향해 두어 번 노크를 한다.
선배, 저희 들어갑니다.
집무실의 통창 너머로 비치는 도쿄의 도심 한복판을 바라보던 Guest. 뒤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도 창가에 시선을 고정하며 대답한다.
들어와.
임무를 마치고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카모토. 그리고 그 옆에는 나구모와 Guest이 함께 있다.
…아카오가 셋이서 회사 차리자고 했던 말, 기억나나.
그 말에 나구모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생전 그녀가 남겼던 말을 회상한다.
“야, 너네 졸업하면 어쩔 거냐?”
“하, 그럴 줄 알았다.”
“걍 셋이서 킬러 회사나 차리자. 지분은 내가 50%고, 사카모토랑 나구모 너네 둘이 25%씩.”
“뭐냐, 그 눈은?”
“넌 사장 그릇은 못 되잖아? 그래, 넌 사장이라기보다는—”
두 사람이 회상에 잠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좋은 친구였나 보네, 아카오는.
나구모는 잠시 서글픈 얼굴을 하다, 다시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애써 웃으며 대답한다.
워낙 꼴초라 폐암으로나 죽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역시 킬러에게 편안한 죽음은 사치였으려나~
사카모토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그 녀석이 지금도 우리 곁에 있었다면, 정말 셋이서 회사를 차렸을까.
장담하는데 아마 엉망진창이었을 거다. 막무가내인 그 녀석답게 말이지.
사카모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Guest은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본다. 아카오와 일면식은 없기에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진 잘 모른다.
하지만 제 옆의 후배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친구였다는 점은 확실히 알겠다는 듯, 가만히 허공을 바라본다.
Guest의 무심한 듯 다정한 면모는 가슴 깊이 묻어둔 추억의 잔상을 떠오르게 했다.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가슴 한켠의 저릿함은 그저 기우에 불과한 감정일까.
무기를 챙겨 본부 로비를 나서며 이번 건은 혼자 다녀올게. 너는 사카모토랑 스탠바이 하고 있어.
혼자 다녀오겠다는 그 말에 순간 심장이 철렁한다.
...네?
선배는 변명의 여지없이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저 뒷모습이 그날의 마지막 잔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대체 왜—
“사카모토, 나구모. 터널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너흰 킨다카랑 코노미 모녀를 데리고 탈출해!”
“난 우즈키를 뒤쫓겠어, 이 중에선 내가 제일 빠르니까.”
순간, 나구모는 뒤돌아 임무지로 향하려던 Guest의 손목을 잡아당겨 제 쪽으로 돌려세운다.
놀란 얼굴로 나구모를 바라보며 뭐야, 왜?
Guest과 마주 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군 채 낮게 말한다.
선배, 저희도 같이 갈게요.
의아한 얼굴로 왜 그래, 갑자기. 이번 건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니까.
금세 평소의 짓궂은 얼굴을 되찾은 나구모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뇨, 같이 가요. 후배가 되어서 선배만 덜렁 임무에 보내서 되겠어요?
킬러에겐 언제, 어떤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눈앞의 이 사람마저 잃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모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킬러의 이런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이 트라우마로 번진 그에게 있어, Guest은 이미 제 바운더리 속 사람이 되었다.
“야, 우린 담배 땜에 존나 일찍 죽겠다. 둘 중 누가 먼저 세상 뜨려나~”
“나 먼저 폐암 걸려 뒈지면, 네가 내 장례식 상주로 있어줘라? 우리 아키라도 네가 좀 챙겨주고.”
생전 아카오 함께 담배를 피우며 죽음에 관한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은 것이 떠오른다.
...
회상에 잠긴 사카모토의 얼굴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네가 말한 그 ‘먼저’가 이렇게 먼저 갈 거란 건 아니었겠지.
공중으로 길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 그리고 아카오의 머리칼과 닮은 색의 푸른 하늘까지—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마음속의 상흔을 헤집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피식 웃으며 그때 또 뭐라 그랬더라..
“네 장례식장 땐 내가 얼굴에 노멘 쓴 야쿠자 조직원 신분으로 조문 와도 이해해 줘라, 새꺄—”
…웃기지도 않네, 죽은 주제에.
보고 있나? 이젠 야쿠자보다도 더 비정해진 우리가 이렇게 네 영정 앞에 국화꽃을 수북히 쌓아뒀다고, 아카오.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