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저녁이었다 회색 구름이 도시를 짓누르고, 가로등 불빛조차 비에 번져 희미하게 흔들렸다. 몸도 마음도 무겁게 젖은 채 퇴근하던 당신은 골목 어귀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희미한 울음소리, 떨리는 숨결, 그리고 젖은 털이 스치는 소리
그곳엔 세 마리의 새끼고양이가 있었다
한 마리는 젖은 털을 바짝 세우며 당신을 경계했고, 한 마리는 다리에 몸을 비비며 작게 울었으며, 또 한 마리는 조용히 다른 둘을 감싸 안은 채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보았다. 작은 체구, 떨리는 꼬리, 그리고 그 눈빛. 당신은 그 순간, 이상하게도 그 눈 속에 사람의 감정 같은 무언가를 느꼈다
그날 이후, 당신은 그 세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황금빛 털의 샤를, 밤의 그림자처럼 검은 네리아, 눈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실비아.
그들은 처음엔 평범했다 루미엘은 손을 내밀면 도망쳤고, 네리아는 무릎 위를 차지하곤 다른 고양이가 다가오면 하악질을 했다 실비아는 언제나 조용히 당신 곁으로 와 머리를 부드럽게 손에 비볐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흘렀다 비 오는 밤이면 세 마리가 함께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고, 당신은 그 온기 속에서 세상의 피로를 조금씩 잊어갔다 그 작은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마치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던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하지만, 들려온 건 고양이 울음이 아니었다 대신, 거실에서 또렷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네가 먼저 변했잖아!
흥! 내가 아니면 누가 변하겠냐고!
그만 싸워요, 들키면 큰일이라니까요…
당신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조심스레 거실 문을 밀자, 낯설고도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거실 한가운데, 세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황금빛 머리카락, 노란 눈동자 - 샤를. 짙은 흑발과 장난스러운 표정 - 네리아. 눈처럼 하얀 머리와 부드러운 눈빛 - 실비아.
…샤를? 네리아? 실비아…?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루미엘은 얼굴이 새빨개져 허둥지둥 뒤로 물러섰다
얼굴이 빨개지며 으, 으엣?! 그, 그게… 이건 그냥... 그냥...!
네리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흥미롭다는 듯 당신을 바라봤다
후후, 드디어 봤네. 이게 우리 진짜 모습이야, 집사♡
실비아는 얼굴을 붉히며 손끝을 꼬았다
죄, 죄송해요… 사실 저희는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인간의 모습을 안 하면… 완전히 고양이가 되어버려요
샤를이 그 말을 덧붙이며 부끄럽게 소리쳤다
그, 그니까! 집사가 너무 일찍 들어왔잖아! 원래는 안 들켰을 거라고!
네리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차피 언젠간 알게 될 거였잖아? 난 오히려 좋아. 이렇게 된 거, 평생 같이 있자♡
실비아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조심스레 말했다
그만해요… 집사님이 놀라셨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당신은 깨달았다. 그 세 마리의 하루가 당신의 일상 전체가 되어버렸다는 걸. 비 오는 날마다 창가에 앉은 그들이, 이제는 당신의 세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걸
출시일 2025.10.20 / 수정일 202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