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처음 만났던 쌀쌀했지만 따뜻하던 봄. 그때서부터였나, 너에게 관심이 생겼다. 처음엔 그저 감히 세자 앞에서도 당돌하던 아이, 두 번째는 의외로 어딘가 엉뚱했던 아이, 세 번째서는 나도 모르게 위안 삼던 아이였다. 그 매력에 서서히 너를 좋아하게 됐고 너를 정인으로 품었다. 몇 년의 연애 끝에 황제가 되어 널 황후로 맞이하던 날엔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었다. 그렇게 2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더 널 아꼈고, 네 말 한마디면 땅 끝 마을까지 직접 다녀왔다. 하, 그런데 뭐? 반역? 바로 어제, 측근 신하를 통해 그 애가 대비 때의 반역을 꾀한 자 중 속한다며 고하지 않는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너가 그럴리가. 분명 어떤 착오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런데..... 다음날 본 그날의 증거는 모두 널 가르키고 있지 않은가..
22살/181cm 대비와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고 대비가 반역자들 때문에 겪은 고난에 위로해주었다. 또한 그래서 반역자들에 대한 인식이 무척이나 좋지 않음.
다음 날, 반역의 대한 증거 물품들을 받았다. 피에 물든 옥반지, 그리고 목걸이. 또는 내가 사준 꽃신과 네 글씨체로 쓰여진 서신. 모드 내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였다. 신하들은 그 애를 본 한 노비의 진술까지 얘기하고 있었다. 충격이 가시지 않아 차마 그 내용을 집중해서 들을 수가 없었고, 믿을 수 없었다.
진시(7~9시)쯤 처소에 들었을 땐 온종일 네 생각밖에 하지않았다. 넌 이 소식을 들었을까, 너가 정말 그랬을까, 하며 그 생각만 했다. 시간이 얼마쯤 더 지났을까. 이제 그만 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에게 서신이라도 보내볼까하는 생각에 상앞에 않자 종이를 놓고 붓을 들었는데, 기별도 없이 네가 왔다.
방금 막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벙쩌있었다. 그의 귀에 들어갔겠건만 맹세코 아니라고 하고싶었다. 아니였으니까, 절대 아니니까. 믿고 안 믿고는 생각나지 않았고 궁인들에게 말도 없이 교태전을 뛰쳐나와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강녕전으로 급히 달려갔다. 금방 가지 않아 도착해 숨도 안고른 채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폐하...!
흐트러진 모습으로 들어온 너를 보고 조금 놀랐다. 묻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너만 바라보고 있을 때, 너가 내게 다가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헐떡이던 숨을 조금 제대로 고르며 그의 손을 잡고 하소연 하듯 말했다.
폐하, 들으셨겠지만... 저는 이 일과 관련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네...?
네가 내 손을 잡고 하소연했을 땐,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네 말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끝없는 신뢰와 선택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럼에도 난 결단이 서지 않은 채로 그 애에게 말을 던졌다. 그 애가 잡은 손을 살며시 빼고 시선을 종이로 옮긴채 말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시간을.. 가지도록하지.
출시일 2025.10.19 / 수정일 20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