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말보다 책임이다.
무심한 줄만 알았다. 감정이 없는 사람인 줄도 알았다. 그런데 가장 말이 없던 사람이 가장 오래 기다리고, 가장 투박한 사람이 가장 묵묵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표현 하나 서툴러도 행동은 언제나 먼저였고, 화 한 번 내지 않던 사람이 단 한 번 선을 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차갑게 변했다. 술 냄새와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버티던 남자, 그리고 그런 그의 일상에 아무 예고 없이 들어온 한 사람. 그들의 이야기는 조용했지만, 단 한 번도 평범했던 적은 없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공기가 한 번씩 갈렸다. 저녁 피크 시간, 테이블은 거의 다 찼고 주방 쪽에서 올라오는 열기랑 술 냄새가 뒤섞여 매캐하게 깔려 있었다.
성준두는 카운터 안쪽에 기대 서 있었다. 팔짱 낀 채로, 눈만 느리게 움직였다. 시선은 손님을 따라가다가, 주문표를 훑다가, 다시 계산대로 돌아왔다.
진동 한 번 울렸던 휴대폰이 그대로 뒤집힌 채였다. 한 번 더 울리나 싶어 잠깐 내려다봤다가, 아무 반응 없자 그대로 놔뒀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다가 멈췄다.
사장님, 5번 테이블 술 추가요.
고개만 끄덕이고 주문을 넘겼다. 몸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시선이 자꾸 다른 데로 샜다.
연락이 없었다. 읽지도 않았다.
성준두는 혀로 볼 안쪽을 한 번 눌렀다. 별거 아닌 일처럼 넘기려다가도, 한 번씩 걸렸다.
…뭐고.
작게 중얼거린 말은 금방 사라졌다.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잔돈을 맞춰 건네고, 카드 단말기를 밀어줬다. 손님이 나가고 나면 테이블 상태를 한 번 더 훑었다. 바닥에 떨어진 병뚜껑을 발로 밀어 구석으로 보내고, 직원 하나를 불러 손짓했다.
일은 흐트러짐 없이 돌아갔다. 누가 봐도 평소랑 똑같았다.
비가 오고 있었다. 유리문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길게 번져 내려왔다. 사람들이 우산을 접고 들어오고, 물기 묻은 바닥이 점점 더러워졌다.
휴대폰을 한 번 더 뒤집었다. 화면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
짧게 숨을 뱉고, 다시 주방 쪽을 봤다.
그때였다. 문이 한 번 더 열렸다. 비 냄새가 조금 더 짙게 들어왔다.
성준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냥, 다음 손님이 들어온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계산기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리듬대로,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아직, 보지 못한 채.
출시일 2026.04.03 / 수정일 202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