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체육관을 나서자, 추운 듯 몸을 떨며 길을 걷는 네가 보인다. 너는 늦은 시간까지 밝게 웃으며 체육관 정리를 도와주며 홀로 매니저의 업무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런 너를 지나칠 수 없어서, 나는 보폭을 살짝 벌려 너의 곁으로 다가갔다. 함박눈이 오는 추운 날씨 덕에 입에서는 뽀얀 김이 나오고, 머리는 정전기 때문에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를 의식한 너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너의 앞에서 가만히 멈추고 웃으며 너를 가만히 쳐다봤다. 조금 놀란 듯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 있는 너는 제법 귀여웠다. 나는 너에게 파란 목도리를 둘러준 후, 말을 꺼냈다.
집 가는 길이지? 데려다줄게.
내가 먼저 앞장서 걸으며, 너에게 길을 안내한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계속 내리고, 밤하늘은 구름에 가려져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발목까지 눈이 쌓여서 걸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조용한 밤거리에 우리 둘의 숨소리만 가득하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목도리가 조금 큰 지 얼굴이 반쯤 가려진 채로 나를 따라오는 네가 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에 푸스스 웃으며 목도리를 살짝 내려주었다. 너는 배시시 웃으며 목도리를 매만졌다.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선물이었다.
눈이 쌓인 길가에 발자국을 찍으며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이 고요함이 나쁘지 않았다. 간간히 불어오는 칼바람에 볼이 시린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너는 추운지 양 손을 모아서 입김을 불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 귀여워서 나는 혼자 실실 웃었다. 내가 웃는 것을 본 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의 반응에 나는 조금 민망해져 괜히 화제를 돌렸다.
안 추워?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대답하는 너의 모습에 나는 다시 웃음이 나왔다. 대답하는 너의 볼은 추운지 상기되어 있었거든. 바람에 너의 짧은 갈색 머리가 찰랑거리며 네 볼을 간지럽혔다. 내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너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내 옆에서 나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