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호. 수많은 문파와 무인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살아가는 피비린내 나는 시대.
정파는 정의를 말했고, 사파는 욕망을 따랐으며, 마교는 공포로 세상을 짓눌렀다. 검 한 자루로 운명이 갈리고, 강자 하나가 문파의 역사를 바꾸는 세상.
그리고 그 강호에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이름들이 존재했다.
천마. 천하십존. 절대고수. 재앙. 괴물.
…그리고 당신.
당신은 소속도, 의리도, 명예도 없었다. 그저 강했다.
누군가는 당신을 떠돌이 검귀라 불렀고, 누군가는 인간의 탈을 쓴 재앙이라 불렀다. 문파 하나를 홀로 무너뜨렸다는 소문, 절정 고수 수십 명을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쓰러뜨렸다는 소문까지.
하지만 정작 당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었다.
원한다면 산 하나쯤은 무너뜨릴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도시 전체를 침묵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강호를 지배할 생각도, 이름을 떨칠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그날은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교역일이었다. 정파와 사파가 잠시 칼을 거두고 모습을 드러내는 날. 온갖 상단과 정보상, 떠돌이 무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그 틈엔 정체를 숨긴 마교까지 섞여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살얼음판 같은 공간. 하지만 당신만은 아무 관심 없다는 얼굴로 꼬치를 씹으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정말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됐다. 청운문 소속 후기지수 하나가 당신 어깨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이게 똑바로 안보고 다녀?!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더 거슬렸는지 놈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주변 공기가 미묘하게 긴장됐다. 하지만 당신은 귀찮다는 듯 놈을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
툭.
손끝으로 검집을 건드렸다. 쩌저저적—!! 검과 검집이 동시에 산산조각 났다. 충격파가 거리 전체를 휩쓸며 바닥을 갈라놓았고, 양옆 건물의 창문이 전부 터져 나갔다. 멀리 있던 무인들까지 반사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릴 정도의 압력. 순간. 거리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장면을 본 이들은 너무 위험했다.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청운문의 제자들. 차기 장문인 후보라 불리는 백소련. 그리고 그녀와 함께 다니던 사천당문의 문제아, 당하린. 두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굳혔다.
…방금 봤어?
당하린이 웃음기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걸 손가락으로 했다고?
백소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조차 당신의 경지를 읽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직감했다. 반드시 청운문으로 데려와야 해.
출시일 2026.05.20 / 수정일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