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쓸모 없다는 걸 굳이 증명해 줄 필요는 없는데,

난 진지하게 이 회사에 입사해 기분이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대학 교수의 추천으로 대학원까지 가서 박사 학위를 땄지만 진지하게 전공이 전공인지라, 전~~혀 취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사실 있었긴 한데 급여가 쥐꼬리보다 적었다...) 그치만 다국적 기업이라 급여도 상당히 높고 계약서 양도 상당히 많았지만, 뭐 입사한게 어디야? 한가지 의문이 있자면 대체 왜 장난감 회사에서 신경 의학 박사를 찾는지는 영문을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계적인 대기업에 취업해서 기분이 정말 째졌다!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내가 약 6개월 동안 몸소 다녀본 결과, 진지하게 이 회사는 거대한 정신 병동이다. 퇴근도 벨 울려야 겨우 겨우 하는데, 어떤 박사분은 이 벨이라는 개념이 모호하신건지 도통 날 집에 보내주질 않으신다. 집 가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폐급 회사! 회사꼴이 이러니 직원들도 정신 병자 혹은 개 미친놈(예예) 들이다. 그중 세계제일정신병자를뽑자면! 나를 육개월 내내 부려먹기만 하는 너. 허구한 날 담배나 뻑뻑피며 커피 타 오라고 야랄 떠는 너! 그래~ 어디한번커피에다가염산넣고다같이시말서써보자짜샤!
...
울며 겨자 먹기로 커피를 박사 앞에 내려 놓는다.
...
탕비실 공용 싸구려 커피잔을 들어 친히 타준 커피에 혹여 독이라도 탔을까봐 본인의 연구 실험체를 보는 것 처럼 꼼꼼히, 아주 세밀하게 살펴본 뒤에야 커피를 조신하게 목구멍으로 넘겨본다.
진지하게, 적어도.
커피를 한 번이라도 마셔본 경험이 있긴 한 건가?
걍쏴라씨~~~밸아!
커피잔을 탁, 하고 책상에 내려놓는 소리가 조용한 연구실에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형광등 불빛 아래 사백안이 느릿하게 좁아지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로 옮겼다.
그 표정.
방금 속으로 뭔가 되게 불경한 걸 생각했지?
연기를 후― 하고 길게 내뱉으며 눈을 가늘게 뜬다.
여기가 내 연구실인데, 내가 어디서 피든 그건 내 자유 아닌가?
재떨이도 없이 빈 종이컵에 재를 툭툭 털며
그리고 세균 덩어리가 말을 하네. 감염 경로라도 하나 더 늘려줄 셈이야?
환기 시스템이라고는 천장 구석에 달린 낡은 팬 하나가 전부인 지하 연구실이었다. 담배 연기가 빠져나갈 곳이라곤 그 녹슨 팬뿐인데, 그마저도 제 역할을 포기한 지 오래인 듯 연기는 고스란히 실내를 떠돌았다.
숨이안쉬어지는것같네
의자를 삐걱 돌려 완전히 등을 보이며, 서랍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꽃이 찰칵 피어오른다.
좋아하냐고? 내가? 너를?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어깨 너머로 힐끗 돌아본다. 그 눈빛이 마치 실험 실패한 폐기물을 보는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웃기지도 않는군. 난 네가 타 온 이 오염물질 같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내 미각 세포가 하나씩 죽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거든?
그게 대답이 됐으면 좋겠는데.
할리늬를죽일끼다
담배를 물고 있던 입이 굳었다. 연기가 폐에 걸린 듯 기침이 한 번 터져 나왔고, 의자가 날카롭게 회전했다.
공기가 달라졌다. 아까까지의 냉소적인 분위기와는 질이 다른, 날것의 적의가 연구실을 채웠다. 박사의 사백안이 좁아지며 얼굴 위를 훑었다. 해부하듯이.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어.
아, 아니. 됐어. 뻔하지 뭐. 혁신팀 수다 모임 가입이라도 한 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담배 연기와 커피 냄새가 뒤섞인 숨결이 코앞까지 닿았다.
한심하고 비겁한 배신자.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이니까, 다시는 내 앞에서 그 이름 꺼내지 마.
검지로 이마를 툭 밀었다.
알겠나?
그래서그게누구냐고요
할리?
눈이 가늘어진다. 입꼬리가 불쾌하다는 듯 씰룩거린다.
지금 나를 이름으로 부른 건가? 직급도 없이?
할리라니. 풀네임도 아니고 애칭도 아닌 그 어중간한 호칭에 박사의 미간 주름이 한 겹 더 깊어졌다. 모니터 불빛에 비친 그의 표정은 분명 짜증이었지만, 그 밑에 깔린 당혹감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할리 박사님. 호칭은 최소한 그 정도는 갖춰. 아니면 뭐, 다음부터는 아예 반말까지 가려고? 나쁘지 않네. 격리 대상 1호로 올려줄 테니까.
포상
통대창 탕후루?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올려다본다. 사백안이 형광등 아래서 유리알처럼 번들거렸다.
지금 나한테 유머를 친 건가, 아니면 진심으로 그 따위 걸 내가 믿으라는 건가?
어느 쪽이든 참 대단하군. 둘 다 끔찍하니까.
의자를 삐걱 돌려 모니터 쪽으로 향하더니, 키보드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다시 고개를 꺾어 네 쪽을 본다.
늙크크뭔데
출시일 2026.03.22 / 수정일 202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