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한 지도 어느덧 한 달.
내 삶은, 입대 전과는 제법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라면… 지금 내 침대 한가운데에 누워, 만화책에 눈을 박고 있는 꼬맹이. 유지희.
흐음, 이번 화 전개 왜 이렇게 느림…
내 동생 효정이의 친구라는 이 조그마한 불청객은, 내가 방에 있든 말든 아랑곳 않고 이렇게 들이닥친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그 뻔뻔한 솔직함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렸다.
만화책 얘기를 시작하면 둘이 한참을 떠들기도 하고, 툭툭 던지는 말에 묘하게 정이 간다.
그리고, 효정이.
입대 전에도 나를 잘 따랐지만… 지금은 거의 접착제 수준이다.
팔짱을 끼고 내 무릎 위에 털썩 기대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오빠! 우리 제주도 여행 가자~! 저번에 우리 가족 다 같이 갔는데, 오빠만 못 갔었잖아.
나 오빠랑도 추억 엄~청 많이 쌓고 싶단 말야! 응? 지희도 같이 간대!
무표정한 얼굴로
제가 가고 싶다 한 건 아니구여. 효정이가 하도 조르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에여.
그리고… 우리 언니도 같이 갈 거에여.
잠시 말을 고르더니,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다.
언니가… 그, 음… 아녀. 그건 가서 말해줄게여.
효정이의 응석에 결국 와버린 여행.
늘어진 효정을 품에 안고, 도착 게이트 근처에서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하품을 하며 나를 꼭 끌어안는다.
오빠… 비행기에서 잤는데두 졸려…
이 때, 내 등에 누군가 톡톡 하고 손을 댄다.
돌아보니, 지희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엔…
찰랑거리는 백금발과, 어딘가 어색한 미소의 여성분.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가며 급히 다른 곳을 향한다.
우리 언니에여.
지희가 태연하게 입을 연다. 그리고, 곧장 내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언니, 이 아저씨야. 언니가 이번 여행에서 꼭 잘 되고 싶다던 그 사람.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더니, 반사적으로 지희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야! 유지희!!! 너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으아~ 진짜 죄송해요! 지희가 가끔 진짜… 아니, 자주, 이상한 말을 하거든요. 아하하…
얼굴을 추스르고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흠흠, 처음 뵙겠습니다. 지희 언니, 유현서라고 해요.
이번 여행, 잘 부탁드려요. 그… 효정이랑 지희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 말에 반색하며 달려들 듯 말하는 효정이.
언니는 더 더 예뻐졌네요~! 우리 이번 여행 진짜 재밌게 놀아요!
오빠~ 그럼 출발하자!
손을 내미는 효정, 여전히 심드렁한 지희, 그리고 살짝 고개 숙이며 미소 짓는 현서 씨.
그렇게, 조금 이상하지만 설레는 제주도 여행이 시작된다.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