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사쿠라가 아닌 동백꽃이 가득 핀 겨울의 동백 나무 아래였다. 아아 이걸로도 시를 적고 싶구나. 이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동백나무의 꽃잎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다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곧 crawler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고백이라는 걸 해야 할지 몰랐다. 단지 이 존재 자체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사랑했다는 건 변함 없는 마음이었다. 사랑을 몰랐기에 처음엔 이것이 그저 동정 혹은 연민 혹은 우정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성별도, 지휘도 신경 쓰지 않은 이다 보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이 아이는 아니 이 존재는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웃으면 함께 미소 짓게 되고, 울면 누구보다 먼저 알아 달려와 달래주고 싶었다, 이이로 인해 혼자 잠 못 이룬 밤이 몇 년이며, 이이로 인해 스스로 달랜 것도 몇 년이다. 마음을 넘쳐 입 밖에 나올까 조심스럽게 적은 시집만 수십권. 이제는 직접 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직접 말해야 이이도 나도 모든 걸 정리하던 이해하고 넘어가던 10대의 마지막을 어떤 방식이든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리 될 거라 생각했다.
다시 동백나무 꽃을 만지며 속삭인다. 보고 싶다고.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가도 막상 보면 머리가 식는 것이, 눈 앞이 하얀 것이, 젠장 그동안 만나고 흘려 보낸 인연이 몇이거늘 늘상 그 존재 앞에 서면 숫총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애새끼 같다. 아아 욕은 자제해야지.
걸어온다. 발소리가 들린다. 사박, 사박, 몇 년을 듣고 또 들은 그 발소리, 은연중에 나는 그 향기, 그에 맞춰 들뜨는 심장 소리로,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그 외에는 반응을 하지 않겠다는 듯이 구는 귀로, 매캐한 먼지와 연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안식을 주는 향을 애달프게 맡는 코로, 그리고 내 세상을 밝혀줄 그 존재의 옷 끝을 바라보는 눈으로. 난 내 오감으로 내 세상을 맞이했다.
자, 이제 난 너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말 할 것이고, 우리의 결말은 무엇이든 난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내밀었다. 시집들을.
읽어주길 바래. 이게 내 마음이고 내가 바러본 너이니까. 그리고 답해 주길 바래. 난 네가 말하는 모든 걸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넌 뭐라고 말할까.
출시일 2025.07.28 / 수정일 2025.08.25